박호재 아시아문화학회 부회장

소설가 김훈 원작 영화 ‘남한산성’이 현재 관객 누적 380만을 넘어서며 흥행에 성공했다. 조선왕조 500년 사에서 가장 참혹했던 역사현장을 다룬 사극이 이렇듯 관객의 사랑을 받은 것은 좀 뜻밖이긴 하다. 당시의 시대상황이 우리가 지금 처한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국민적 공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화는 사대의 의를 맺어왔던 명나라와 신흥 강국이 되어 중원의 새로운 주인으로 떠오른 청나라 사이에 끼여 곤욕을 치르는 조선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의리명분을 쫓아 청과 대적하자니 사직이 무너질 게 분명하고, 또 살길을 찾아 청을 사대하려니 성리학의 의리명분론이 핏속에 흐르는 사대부의 도리가 아니었다. 이 때문에 조정은 김상헌을 필두로 하는 주화와 최명길이 앞장 선 척화로 갈라져 적이 코앞에 닥친 위기 속에서도 분란을 겪어야 했다.

작금의 대한민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남북 간의 핵 갈등은 우리를 미·중 사이에서 외줄을 타야 하는 처지로 몰아세우고 있다. 이 와중에 남북 간의 평화를 앞세운 주장과 미국에 기댄 핵 무장을 통해서라도 북을 강압해야 한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옳고 그름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사안이기에 논쟁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남한산성의 원작자 김훈은 최근 모 방송에 출연해 이런 얘기를 했다. 사대주의는 분명 경계해야 하지만, 민족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펴 온 사대를 배척의 시선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500년 왕조를 유지한 조선의 사대를 선악의 개념으로만 파악할 사안은 아니라는 얘기다.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가 미국에 가서 핵무장 배치를 청해 여권과 갈등을 빚고 있다. 그렇다면 홍 대표의 행보는 사대인가, 아니면 사대주의일까?

박호재 아시아문화학회 부회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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