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편지] 소설 ‘토지’가 창조한 국제슬로시티

어디든 가자는 선배의 느닷없는 성화에 따라 나섰습니다. 차 속에서야 목적지를 구례 운조루로 정했습니다. 250년쯤 전 금환락지(金環落地)의 명당으로 알려진 터에 낙안군수를 지낸 유이주(경칭생략)가 지은 고택입니다. 집 보다는 누구나 쌀을 퍼갈 수 있는 뒤주가 유명합니다. 지금도 튼튼한 모습을 하고 있더군요. 뒤주 아랫부분에 가로 10Cm 세로 20Cm 정도 되는 문을 내고 누구나 열어도 된다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써놨습니다.

이 뒤주는 상류층의 도덕적 의무를 실행한 상징물로서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명합니다. 인근에 굶는 사람이 없게 세심한 배려를 한 경주 최 부자 집과 함께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입니다. 집 문을 들어서자 깔끔한 할머니 한 분이 천 원씩을 받더군요. 유이주의 10대손 맏며느리라고 합니다. 들일을 하고 돌아온 아들도 보았습니다. 부자 살림은 아니라도 건강하게 대를 이어가는 복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엌이나 광 등 옛 모습을 간직한 운조루를 찾는 발길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집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도덕적 의무를 행한 유이주의 정신을 본받기 위해 찾은 사람들이겠지요. 이기주의가 만연한 각박한 세상이라지만 운조루를 찾는 사람들이 있는 이 땅은 결코 ‘헬 조선’이 아닙니다.

아직 해가 중천에 있어 가까운 하동 ‘최 참판댁’으로 향했습니다. 전라도와 경상도라지만 불과 20Km 밖에 되지 않습니다.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유명한 악양 평사리는 중국의 악양과 닮았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랍니다. 동학혁명에서 근대사까지 우리 한민족의 대서사시인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인 이곳엔 소설속의 최참판댁과 소작인들이 실제 살았던 것처럼 조성돼 있습니다.

동학혁명과 일제의 강점기의 아픈 민족의 대서사시인 소설 ‘토지’는 평사리에서 소설이 아닌 현실의 마을로 태어났습니다. ‘최참판댁’을 오르는 길목엔 ‘알프스’ 마을이 조성됐습니다. 관광객들을 위한 상가가 제법 활기를 띄고 있었습니다. 소성 ‘토지’가 지리산 자락 거치른 야산을 국제슬로시티 인증을 받은 유명 관광지를 창조한 것이지요. 물론 박경리 문학관도 있었습니다. 매년 가을이면 전국 문인들의 문학축제인 토지문학제가 이곳에서 개최되어 문학마을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니 부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소설가 박경리가 ‘창조주’인 평사리에서 문학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우리 영광에도 조운 선생을 비롯한 많은 문인들과 작품과 스토리가 있습니다. 과거 남도문학 1번지였던 영광을 재탄생 시키면 ‘최참판댁’에 못지않은 ‘창조’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문학은 삶의 질을 높입니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합니다. 관광 콘텐츠이며 경제입니다. 닫힌 문을 열어야 합니다.

※ 조일근(曺一根 ‧ Cho Il Keun) 편집위원장 약력

생년월일 : 1951. 1. 8

본적 :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도동리 247

주소 :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중앙로 19

H·P : 010-4790-1165

e-mail : jigpress@naver.com

※ 학력

1962. 2. 광주서석초등학교 졸업

1966. 2. 광주서중학교 졸업

1969. 2. 광주제일고등학교 졸업

1976. 2. 한양대 신문학과 졸업

1989. 9. 호남대 행정대학원 졸업(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