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편집위원장

지방자치 확대가 화두다. 중앙 권력을 더 많이 지방자치단체에 넘겨야 된다는 것이다. 지방자치는 두 번의 실패를 거쳐 91년부터 자리를 잡아 오늘에 이르렀다. 26년이 지났으니 사람으로 치면 성숙기에 들어섰다. 과연 우리 지방자치는 성숙기에 들어섰는가. 아니다. 단체장이나 의원들로부터 돌팔매 맞을 말이지만 불량 청소년이다. 나이 값 못 한다. 제 구실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성숙해지려면 실패도 해보아야 한다지만 아직 도 멀었다는 생각뿐이다. 8대 선거가 다가온다. 벌써 분위기는 익어간다. 후보자로 거명되는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알려준다. 그동안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는지 물으면 줄줄이 읊을 것이다. 단체장은 무슨 사업을 했다고 자랑할 것이다. 의원은 무슨 조례 안을 발의 했고 무슨 사업을 했다고. 언뜻 들으면 그럴 듯하다. 왜? 보통 시민들은 그 민낯을 보지 못하니까.

지방자치 주역들 가운데 무슨 대상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 상을 주는 주체도 밝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주로 마이너 언론사가 판촉용으로 주는 상일 것으로 짐작한다. 주민 표로 당선됐으니 예우는 해야겠지만 존경을 표할 수 있는 의원 찾기가 쉽지 않다. 모두 “섬기겠다” 고 약속했다. 만나면 어디서든 손을 내밀고 악수한다. 사람들 모이는 행사장은 빠지지 않는다. 넥타이 매고 앞자리 앉아 소개 받고 인사한다. 행사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친근감을 표한다. 주민들은 섬김을 받는다고 생각할까? 폼 잡고 재고 다니는 것으로 비친다.

선배 한 분의 부름을 받았다. 지방 선거 분위기를 넌지시 묻는다. 지방자치에 대한 실망감을 털어 놓는다. 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무슨 방법이 없는지 묻는다. 답은 하나다. 유능하고 도덕적 청렴성이 있는 인물을 뽑는 것이다. 어떤 능력을 발휘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능력 보다 연고와 돈이 당락을 가르기 때문이다.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 찾 기다(緣木求魚).

슬픈 대화는 한참 이어졌다. 누구의 잘못인가? 유권자인가, 의원이나 단체장인가. 우리 지역은 공천과 돈이 당락을 갈랐다. 지역민들은 후보가 주는 돈을 스스럼없이 받는다. 결과는 늘 돈을 많이 썼다고 소문 난 후보의 당선이다. 돈을 뿌리지 않으면 당선될 수 없으니 뿌린다. 주지 않으면 특별히 나에게 투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쓰지 않을 수 없다. 세월의 인연도 돈 앞에서 무너진다.

일정 정도 기득권을 가진 집단에는 돈을 쓰지 않는다. 돈으로 표의 향방을 바꿀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부상조하며 기득권을 지켜나간다. 기득권은 돈으로 이어진다. 보통 시민은 열심히 일해야 돈이 벌리지만 그들은 기득권만 지키면 돈 걱정 없다. 지역마다 기득권을 수호하며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 두세 개 씩은 있다. 모임 이름이 ‘형제계’라면 예외 없이 기득권자들의 모임이다.

좁은 지역사회에서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이 형제처럼 지내는데 누가 그들의 기득권에 도전할 것인가. 지방정치의 흐름도 민감하게 포착한다. 아니 그 흐름을 만들어 낸다. 그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선거가 끝나면 늘 당선자들과 친하다. 지방자치가 불량청소년 대접을 받는 데 이들 ‘형제’들의 책임이 없지 않은 이유다.

선배는 언론이 앞장서 지방자치의 질을 높여달라고 주문했다. 뜨끔했다. 부끄러웠다. 기층 민중들은 돈을 받지 않으면, 그리고 그가 당선되지 않으면 기댈 곳이 없다. 돈을 받아야 그나마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할 유력자와 인연을 맺을 수 있다. 돈을 받는 이유로 이보다 더 현실적인 이유가 있겠는가. ‘잘 나가는’ 사람들끼리 뭉쳐 ‘형제계’를 하면서 기층민중들을 탓해선 안 된다. ‘형제계’를 파(罷)하고 기층 민중의 ‘멘토’가 되어 나라다운 나라, 지방자치다운 지방자치가 되는데 앞장주시라.

조일근 편집위원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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