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시인 장진기

눈이 사보록히 오면

한 해가 기울어 우리가 늙어 간다고

마음을 녹여주는 시 한 편 주라신다

눈이 오면 신나서 죽고 못 살던 시절

폐교 창틀 뜯어 네루 썰매를 만들고

참대 쪼개서 군불에 휘어 대 스키를 마련했다

엄니는 헌옷 풀어 개털 장갑을 절어 주고

누비바지 물팍을 접 대어 방한복을 만들었다

그 기억이 가물가물 풍등으로 날아간다

하마 기러기가 올 때가 되었는데

요새는 두 세 줄로 연달아 오는 새떼를 볼 수가 없다

그만큼 우리의 풍경도 창백해졌다

첫눈이 올 때 창문사 건너 우체통 앞에서 보자던

여자아이는 지금까지 오지 않는다

아니 왔다 갔는데 내 눈은 진눈깨비 눈이었고

여자의 눈은 사래기 눈이어서 때가 엇갈렸을까

누나는 동국대 사회학과를 정년한 조은 교수였고

먼 친척 동생은 은퇴하여 지역 언론사를 하는데

반 생 뒤 만나 하루 고향 여행을 했다

지켜보는 짝사랑이 아름답다

그 시절의 눈은 무지막지하게 내려 찻길이 막혔다

눈이 녹을 때까지 신작로 깔크막에서 썰매를 탔다

이제서 나이 들어 눈을 치운다

한 고샅에서 살던 형 동생들이 고향에 돌아와 만난다

일신당 은성당구장 오복식당 용문만두 목포상회

영광극장 중앙극장 개정리 황토구뎅이 황샘......,

사람이 사람과 살고

사람들 중에 고향 사람을 만나서 정을 나눈다

올 겨울 사거리 첫눈은 세월을 덮고

나이를 묻고

추억만 수북할까

써 놨던 시보다 바로 써 주는 것이 정감있지 않아? 형

영광읍 사거리 옛모습 지금은 사라진 일신당과 영창사진관 등의 간판이 보인다. <사진=영광문화원 제공>

장진기 시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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