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순 군서초등학교 교사

내가 교단에 들어선 지도 벌써 23년 3개월이 되었다. 처음 교단에 들어서던 1994년 9월에는 전남 고흥으로 발령이 났었다. 도시에서 자란 나에게는 시골이라는 풍경이 그리 익숙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얼굴은 따가운 햇살에 구리빛이었고, 맨발로 교실에 성큼성큼 들어와 나를 놀래키곤 했다. 교감선생님께서 “운동장 조회에서 새로 오신 선생님의 소감을 듣겠습니다” 해서 조회대에 올라갔을 때 “학생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여러분들과 즐겁게 생활하고 웃음이 넘치는 교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발표를 했을 때 참 많이도 떨렸었다.

전교생이 55명 남짓했지만 모두들 건강한 모습이었고, 맑고 초롱초롱한 눈빛이 기억에 남았다. “선생님, 선생님!” 하고 부르며 달려와 줄 때 가슴이 뭉클했고, ‘아! 내가 선생님이구나.’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관사에 머물렀는데, 이따금 내가 담임한 2학년 학부모님이 손수 농사 지으신 오이와 방울토마토를 가져다주시곤 했다. 처음엔 받아도 되나 망설였지만 어머니께서 “선생님이 한번 드셔보라고 가져왔어요.” 해서 밥상에 놓았는데 햇볕에 그을리고, 모자를 쓰신 그 어머님이 떠올라서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그 이듬해는 5월 마을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축제처럼 열리는 운동회 때 여선생님이 우리 학교에서는 나 혼자여서 내가 무용을 맡았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은 것 같아서 나는 고전무용인 부채춤을 하기로 했다. 광주에서 근무하는 친구에게 물어서 부채춤 대형이나 적당한 음악을 고르는데 도움을 받았다. 따로 강당이 없어서 운동장에서 연습해야 했는데, 따가운 햇살아래 열심히도 참고 연습해준 아이들이 고마웠다.

당일 운동회날 부채춤을 과연 아이들이 대형을 신속하게 잘 맞춰줄까 걱정이 되었다. 드디어 부채춤 공연 순서가 돌아왔다. 아이들이 의외로 원활하게 부채춤 공연을 아름답게 해 주었다. 한복을 단체로 빌리는 상황이 어려웠던 때라, 집에서 준비하고, 없던 아이들은 빌려서라도 한복을 갖춰 입게 했는데 무대에서 보니 한복의 아름다운 색과 무늬가 참 예뻐 보였다.

공연이 끝나자 마을 어르신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와 함께 “와 잘한다!” 하며 환호도 같이 들으니 그동안 고생한 것에 화답을 받은 것 같아 너무 고마웠다. 아이들의 귀여운 자태와 멋있는 선이 너무도 잘해 준 것 같았다. 선배 선생님 말씀이 맞는 것 같다. ‘처음 교단에 들어선 학교와 마지막으로 퇴임한 학교는 정말 못 잊는다’ 하신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처음 신규로 와서 의욕은 앞서고 덤벙대며 이리 뛰고 저리 뛸 때 교실에 찾아오셔서 선배 선생님들의 경험과 ‘교수·학습 방법’, ‘아이들의 감정을 읽는 방법’ 등을 자상하게 도움 말씀을 해 주신 것을 잊지 못한다. 지금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도 올해 신규로 오신 선생님들과 우리 학교가 첫 근무지인 선생님도 계신다. 신규 선생님들의 마음이 어떨지 조금은 짐작이 가고, 항상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으로 임할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도움이 되어 드리고자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교대 입학 오리엔테이션 때 어느 교수님이 하신 말씀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안과 의사는 사람들의 아픈 눈을 보지만, 우리 교사는 아이들의 맑고 초롱초롱한 눈을 대한다.”는 말씀처럼 나는 오늘도 우리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들의 별빛처럼 초롱초롱한 눈을 대함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동안 교사생활을 하면서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옆에서 아낌없이 도움을 주시고 같이 고민해 주시던 선배 선생님들이 계시기에 지금 내가 여기 있는 것 같다.

미국의 어느 대통령이 “나를 여기에까지 이끌어주신 분은 내가 다니던 어느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다. 그때 나에게 ‘넌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아이야. 너는 멋지고 기대이상으로 자랄 것이라고 믿어.’라고 말씀해 주셔서 내가 이렇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라는 말씀을 하신 것을 TV로 본 적이 있다. 그때 ‘아! 초등학교 선생님의 역할이 이렇게도 중요하구나’ 라고 느끼게 되었다. 내가 머물고 있고 내가 사는 인생의 절반을 머물고 있는 이 교단에서, 나중에 교단을 떠날 때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라는 생각을 갖도록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는 교사로 살아가야겠다.

이복순 군서초등학교 교사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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