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재 아시아문화학회 부회장

우리나라처럼 자영업자가 많은 국가도 드물 것이다. 거의 모든 거리에 각양각색의 간판을 단 가게들이 어깨를 다닥다닥 맞대고 늘어서 있다. 길을 걷다보면 저 가게들이 어떻게 다 수익을 낼 수 있을까 싶은 걱정이 앞설 정도다.

괜한 걱정은 아니다. 최근 사례로 볼 때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의 성공과 실패는 두께를 알 수 없는 얼음 위를 걷는 형국과 같다. 두터운 얼음 위를 거칠 것 없이 나아가다가 어느 순간 실팍한 얼음을 만나 낭패를 당하기 일쑤다. 동종 업종이 많은 음식점이나 치킨집, 분식집, 커피숍 등은 그 정도는 더 심각하다. 개업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간판을 바꿔 다는 경우도 허다하고, 잘된다고 입소문이 나던 가게들도 장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자영업자가 많아서도 그렇지만, 가장 큰 원인은 유사한 업종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때문이다. 좀 사람이 모여든다 싶으면 어느 사이엔가 똑같은 물건을 파는 가게가 지근거리에 들어선다. 상황이 그렇게 되면 점포주들은 가격을 낮추고, 메뉴를 보강하고, 시설을 개조하는 등등 안간힘을 쓰다가 그 중 한 사람은 결국 주저앉고 만다.

그게 바로 자본주의 시장경쟁체제가 지닌 정글의 논리라며 당연시하기에는 안타까운 대목이 너무 많다. 자영업자들 대부분이 영세한 자본으로 출발을 하고 있는데다, 달리 먹고 살 방도가 없는 생계형 점포가 많기 때문이다.

필자가 사는 주택가에 1년 전 쯤 커피숍이 한 곳 문을 열어 웬만큼은 영업을 하는 눈치였는데 최근에 바로 맞은 편에 또 까페가 하나 생겨났다. 그 길을 지날 때마다 두 가게 주인들 심정이 지금 어떨지 조마조마한 느낌이 들었는데, 벌써 우려했던 수순으로 상황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모닝 커피값을 절반으로 낮추고, 특별메뉴를 홍보하는 거치대를 문 앞에 세우고, 또 한 가게는 군고구마까지 판매하고 있으며, 반대편 가게는 알바생을 줄였다. 그 경쟁의 끝이 어디에 이를지 필자는 벌써부터 두려운 마음이 생긴다. 승패로까지 이어지진 않더라도 가게 문을 열 때 꿨던 주인들의 꿈은 최소한 절반으로 꺾일 게 분명하다. 그 빈자리는 한숨으로 체워질 것이다. 밀식을 한 곡물이 제대로 된 수확을 낼 수 없는 이치와 같다.

먼 발치에서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당사자들의 지혜 없음과 상도덕의 부재를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걸 탓할 수만은 없다. 당장 가게라도 열어야 먹고 살 수 있는 입장에서 큰 기업이 입지를 고르듯 이런 저런 변수들을 오래도록 따져보거나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할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모 유명 프랜차이즈 점포를 내려고 했던 친지로부터 뜻밖의 얘길 들었다. 신청을 했더니 입지를 평가하는 직원이 여러 날 시간을 뜸들이며 검토를 하더니 인근에 자사의 프랜차이즈 점포가 있어 불허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나 친지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사실 가까운 곳에 있다는 그 점포는 8차선 큰 길 건너 두 블록이나 떨어진 곳에 있었던 까닭이다.

친지는 언성을 높여 얘기하고 있었지만 필자는 그 순간 바로 그러한 깐깐한 원칙이 그 프랜차이즈 기업 고속성장의 진정한 동력임을 깨달았다. 점포주의 성업이 곧 회사의 성장이라는 경영철학이 발현된 사례로 마음에 다가섰기 때문이다.

박호재 아시아문화학회 부회장 (언론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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