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편집위원장

매서운 추위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맘때면 농민들의 몸과 마음이 가장 편안해질 때였다. 나라가 점차 부유해지면서 농민들의 심사는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는 추수와 동시에 ‘투쟁’에 들어가는 것이 연례행사가 돼버렸다. 다행히 올해는 쌀값 투쟁을 하는 모습은 없다. 쌀값이 예년에 비해 높게 책정된 때문이다. 하지만 농민들은 아직도 밥 한 공기 값이 자판기 커피 한 잔 보다 낮다는 점을 들어 점차 가격이 오르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들녘엔 아직 시름이 걷히지 않고 있다. 애써 가꾼 배추를 갈아엎어야 할 만큼 가격이 폭락한 때문이다. 2000원 에 팔던 배추를 500원에 팔아야 할 형편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물론 농민들이 수요 예측을 잘못해서 과잉 생산된 것이 주요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사태를 예측하고 지도해야 할 농정당국에도 일말의 책임은 있다. 당국은 “농민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당국자들의 볼멘소리는 언뜻 그럴싸하게 들린다. 하지만 무책임의 극치를 드러낸 발언이다. 농민들이 왜 말을 듣지 않는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오랜 세월 농정 당국이 신뢰받을 만 한 농정을 폈으면 농민들이 왜 말을 듣지 않겠는가. 농민들 사이에는 농정 당국이 권장하는 반대로만 하면 성공한다는 말이 널리 퍼져있다. 농정과 농민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농정의 실패다. 그 실패 원인을 농민에게서 찾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영광의 배추 농민들이 밭을 갈아엎어야 할 판에 농협과 축협이 운영하는 마트에서 해남이나 무안에서 배추를 들여와 '세일' 행사를 한다하니 어이가 없다. 농민들의 공분을 살 짓거리다. 지역에서 남아도는 농산품을 놔두고 외지에서 들여다 판다니 제정신이 아니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농협이고 축협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조합원 이익을 위해서 마트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밖에 없다고 변명할 것이다. 농민의 이익과 조합원의 이익은 다르단 말인가 묻는다.

특히 농협은 농민을 위한 사업에 영광군으로부터도 상당한 사업비 지원을 받고 있다. 영광의 농민을 위한 조합 운영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인 이유다. 배추 농민은 영농비 손해에 더해 갈아엎는 비용도 만만찮게 들어갈 것이다. 군 농정 당국과 농협은 물론이고 축협도 외지에서 배추를 들여다 세일을 하는 짓거리는 당장 그쳐야 한다. 그리고 배추 농가의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을 주문하는 바다. 농협만이라도 ‘농자천하지대본’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일근 편집위원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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