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쯤 저쪽에 처음 장 진기 시인과 그의 시를 만났다.

집채 더미에 비길만한 황소 같고 부잣집 상머슴 같은데 물동이 이고 물방울 하나 흘리지 않는 조신한 시골 처녀의 모습을 가진, 뭇 생명에 대한 애증을 더해주는 생명시와 반핵시를 줄기차게 쓰고, 고향 이야기를 담은 시를 노래하는 사람이 신령스런 고장 영광에 살고 있구나.

1.황소의 힘과 숫처녀의 순정이 한몸에 들어간 시 세계

오늘의 시가 제아무리 모더니즘을 통과의례로 거쳐야 한 대도 원초적인 상징물들-해와 달과 별과 흙과 나무와 꽃, 무엇보다 사람의 성정(性情)을 시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야 된다고 생각한다. 장 진기의 시에서 그것이 보여 기뻤다.

2.‘물잠자리’와 ‘새가 앉았다 날아간…’은 장 진기 詩의 본얼굴

장 시인은 그 옛날 시골 숫처녀의 고운 숨결에서나 느낄 수 있는 서정성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물잠자리’는 시가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으면서 곱고 연푸른 성정을 찬연하게 보여주는 노래다. 시인의 고운 눈매가 그려지고 있어 기분이 좋아지는 절창이다.좋은 시는 음악성, 회화성,을 갖추면서 서정성과 서사성을 함께 지녔을 때 진가가 드러난다. 고향 영광이 있었기에 ‘물잠자리’ 같은 시가 나왔을 것이다.

‘새가 앉았다 내려간 나무만이 숲을 얘기할 수 있네’가 가장 역작이며 수작일 것이다. 역량과 인생과 세계관의 폭과 깊이를 보여준다.

3.‘석류’ ‘구룡폭포’ 등 조운 문학, 영광 문학의 맥을 이어받아

시 ‘첫눈’은 한반도 시조문학의 큰 봉우리 조운의 시를 연상 시킨다. 근대문학을 통틀어 가장 완벽하고 탄탄한 작품으로 정평이 나 있는 ‘석류’에서 보여준 시정신을 먼 훗날 동향 후배 장 진기가 이어받고 있는 것처럼 짐작된다.

사설시조 ‘구룡폭포’의 유장한 시적 미학과 맥을 같이 하고 있어 보인다. 생을 닦고 닦아 바꾸면서 가르침이 되려는 것으로 파악된다.

4.백제불교 도래지, 원불교 탄생지에 ‘불의 신’이 들어앉고…詩人은?

한반도의 종교와 철학, 문학사에서 영광을 빼놓으면 제대로 설명했다고 말할 수 없다. 불교 도래지 법성포와 불갑사, 수은 강항의 불갑면 쌍운리, 원불교 대종사 소태산 박 중빈이 태어난 백수면 길룡리, 현대문학을 출발시킨 조운과 박 화성 등 셀 수 없다.

장 진기도 그 반열에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영광은 이데올로기와 악몽을 떨쳐 일어나야 한다. 그런 일을 하는데 문학과 음악, 연희 예술이 동참하여야 한다.

이제 영광은 또 하나, 핵을 안고 있다. 시인 장 진기는 반핵 시로 항거하면서 생명중심운동, 혹은 휴머니즘에 대한 열망을 원전 관련 시의 중심에도 놓는다.

첫 시집의 자연의 언어가, 이번엔 도시적인 문명어로 씌었다. 반핵 환경 운동에서 기인된 것이리라. 그에게 시는 변혁운동을 위한 채찍이 아닐까.

5.결국 ‘사람의 사랑’만이 지구의 종말을 막아낼 수 있다

무지막지한 비극이 되풀이 속에서 장 시인도 서정시를 쓸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에 파괴되어 가는 인간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하는 시 ‘재림’, 거대한 비극을 잊어버리는 군상들을 꼬집는 시 ‘망각’, 수장된 난민들을 그린 ‘전복’ 등의 시는 읽는 이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데 성공한 시들이다. ‘지구는 생명의 마지막 별’은 시인의 시세계를 대표하는 좋은 시로 읽혔다.

장 진기의 시가 결국 사람을 위한 시로 모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숨을 내쉴 수가 있어 마음이 따뜻해져 왔다. 장 진기의 시가 더 큰 바다를 향할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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