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위해서 갖은 비굴한 행동을 하면서도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뻔뻔한 인간들을 맹자는 이렇게 비유했다. 전국시대 제(齊)나라에 본처와 소실을 함께 데리고 허세를 부리며 사는 사람이 있었다. 외출만하면 술과 음식을 배불리 먹고 돌아왔다. 아내가 누구와 술을 마셨냐고 물으면, 항상 당대의 이름난 사람들을 부르면서 그들과 마셨다고 거드름을 피우며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아내는 반신반의(半信半疑) 했다. 어느 날 본처가 소실에게 말했다. “바깥양반이 나갔다하면 술과 음식을 배불리 먹고 돌아오네, 누구와 마셨냐고 물으면 상대는 모두 알만한 명사들이라고 하는데, 바깥양반이 말하는 그러한 명사들은 우리 집에 온 일이 한 번도 없으니 의심스럽지 않는가? 내일은 바깥양반을 미행(尾行)해 보겠네.”

다음날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의관(衣冠)을 단정히 갖추고 집을 나서는 남편의 뒤를 아내는 은밀히 뒤따랐다. 남편은 저자거리를 비롯한 시내를 두루 돌아 다녔으나 누구 한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사람도 없었고, 누구를 만나는 사람도 없었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점심때가 훨씬 지나서야 동문 밖으로 발길을 돌렸다. 뒤를 밟던 아내는 이제야 당신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 명사의 집을 찾아 가는가 보다 하고 기대를 하며 남편을 놓칠세라 바싹 붙어서 따라 갔다.

남편은 명사의 집이 아니라 동문 밖 공동묘지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공동묘지에는 새로 장사를 치르는 사람, 장사를 치르고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보였다. 그는 무덤 곁으로 다가갔다. 제사가 끝나고 음복하며 음식이 나누어지자, 제사음식을 얻어먹었다. 두서너 곳의 무덤을 찾다보니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고 술도 거나하게 취했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트림을 크게 하며 집으로 향했다.

종일 남편을 뒤쫓던 아내는 남편의 행동에 기가 막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당대의 명사들과 술을 마셨다는 것은 허세(虛勢)고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당장이라도 남편에게 달려들어 분풀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착하고 순진한 아내는 그러지 못하고 정신을 수습하여 재빨리 남편보다 앞서 집으로 돌아왔다. 먼저 도착한 아내는 소실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오늘 따라다니며 지켜본 내용을 남김없이 털어 놓았다.

“이런 무능한 사람을 의지하며 일생을 살려 했다니 이일을 어찌 했으면 좋단 말인가?” 본처와 소실은 서로 부둥켜안고 목을 놓아 울었다. 그 사람은 집에서 어찌 된 줄도 모르고 얻어 마신 술에 주흥(酒興)이 도도해져 돌아와서 아내와 소실에게 오늘도 역시 명사들의 대접을 받아 기분이 좋다고 뽐내었다.

맹자(孟子)는 우리에게 이렇게 허세를 부리는 사람을 비유하여 ≪맹자(孟子)≫ <이루상편>에서 말한다. 당시 좋은 고대광실(高大廣室)에서 살고 맛난 음식을 먹으며 부귀를 자랑하던 이들을 향해 과연 그들이 그러한 부귀를 얻는 방법이 정당 했는지를 묻고 있다. 맹자가 보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제사지내고 남은 음식을 비굴한 웃음으로 구걸해 배를 채우고서 배부름을 으스대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맹자가 지금에 와서 우리에게 가르친다면 아마 소인에게는 여러 부류가 있으나 그중에서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변신에 능한 이중인격(二重人格)자 즉,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수단방법을 무시하고 온갖 비굴한 행동은 물론 약자에게는 거드름을 피우고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한 면모(面貌)를 보이면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상을 경계(警戒)하라고 가르치지 않을까.

이경일 회사원 (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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