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재 아시아문화학회 부회장

인생은 철인 5종경기와 다를 바 없다. 가파른 산을 넘고 거친 물살을 헤엄쳐야 하는 등 숱한 고비를 넘겨야 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살아가는 얘기들을 들어보면 모두들 나름 굴곡진 인생을 살아왔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제 갓 세상에 나서는 청년들 또한 사회인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개의 큰 산을 넘어야 한다. 대학입시와 취업이다. 두 가지 모두 녹록한 과정이 아니다. 너무 힘겨워 자살에 이르는 안타까운 사례가 발생할 정도다.

얼마 전 수능점수가 발표됐다. 주변 곳곳에서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원하는 것을 얻었다는 낭보 보다는 낙담이 더욱 많다. 당연한 일이다. 욕망은 늘 자신의 능력이나 현실보다 앞서가니까. 수능에 실패한 수험생들의 절망은 더욱 깊을 수밖에 없다. 인생에서 처음 맞는 지독한 상처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의 입시제도는 학생들을 생존경기장에 몰아넣고 서열을 가르는 식으로 잔혹하기조차 하다. 그래서 고통은 더욱 극심하다.

불가피한 경쟁의 첫 장에서 패배한 청소년들의 이 겨울은 평생 잊지 못할 마음속의 한파로 기억될 것이다. 부모와 가족의 위로, 그리고 가까운 어른들의 따뜻한 배려가 필요한 시기다. 자신들을 둘러싼 주변의 따가운 시선은 이들의 절망을 더욱 깊게 한다.

낙오의 상처는 대부분, 누군가는 그곳에 이르렀지만 자신은 이르지 못했다는 열패감에 기인할 때가 많다. 또한 그렇게 엇갈린 상황이 오랜 불운이 될 것이라는 절망이 그 상처를 더욱 쓰라리게 만든다. 아직은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삶이 존재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알 수 없기에 삶의 길을 잃어버렸다고 주저앉게 마련이다.

그러나 장담컨대, 결코 멀지않은 시간 후에 작금의 실패가 삶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진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세상의 길은 천만갈래로 열려있고 기회는 도처에 산재한다. 주어진 여건 속에서 자신의 길을 꾸준히 걷다 보면 썩 괜찮은 목적지에 이르는 날이 꼭 찾아온다.

주위를 돌아보면 필자의 이 언급을 증명할 사례는 허다하다.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취업에 이르지 못한 안타까운 젊음이 있는가 하면 빈약해 보이는 학력으로도 자신의 여건에 맞는 일터를 구해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는 청년도 많다. 아예 대학 입학을 접고 직능교육을 수료한 후 전문 직업인의 길로 들어선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한 번의 실패로 좌절한 이들의 이러한 새로운 희망 찾기를 가로막는 것은 무엇일까?

낮 익은 길을 걸어가는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이 새롭게 접어든 삶의 길을 사랑하지 않는…그 편견이야말로 가장 큰 장애물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한 결 같이 똑같은 인생의 길을 걸을 수는 없다. 또한 그 인생의 길은 속도 총량제와도 같기에 아스팔트길을 쌩쌩 내달리든, 고즈넉한 산길을 소요하듯 걷든, 종착지에 이르는 시간은 같다. 굽이굽이 삶의 길에서 맞는 굴곡에 당황할 이유도, 절망으로 주저앉을 까닭도 없다.

청년이 좋은 것은 단지 육신이 젊어서가 아니라 수많은 미래의 기회를 남겨두고 있기에 그렇다. 이런 저런 세파를 겪으며 살아온 필자는 이 겨울에 상처받은 청소년들에게 이런 말을 꼭 새겨주고 싶다. 내가 걸어가면, 바로 그것이 길이다.

박호재 아시아문화학회 부회장 (언론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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