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다른 사람으로 분장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흉내 내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그럴듯하게 꾸며서 진짜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 요즘 말하는 코미디나 문학예술 작품 등에서 남의 것을 교묘하게 모방해 창조성이 결여된 작품에 비유하기도 한다. 춘추시대 오패(五覇)중의 한사람인 초나라 장왕(莊王) 때 우맹(優孟)이라는 웃기기를 잘하는 사람이 있었다. 키가 팔척장신이며 항상 웃는 낯으로 풍간(諷諫)을 잘하므로, 당시 재상이었던 손숙오도 그를 현명한 사람이라고 칭찬하며 매우 사랑했다.

손숙오(孫叔敖)는 청렴하고 욕심이 없이 살다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을 때 아들에게 유언(遺言)을 했다. “너는 가진 것이 없으므로 분명 가난하게 살게 될 테니 그때는 우맹을 찾아가 네가 손숙오 아들이라고 말해라.” 몇 년 후, 과연 손숙오의 아들은 가난하게 되어 땔감을 팔아 겨우 먹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맹이 교외에 나갔다가 땔감을 짊어지고 오는 손숙오의 아들 손안(孫安)을 만났다.

우맹은 깜짝 놀라며 “손숙오의 아들이 웬 고생입니까?” “선친께서 여러 해 재상으로 계셨으나 남긴 재산이 없으니 땔감를 팔아서 연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맹이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그래서 손 재상의 명성이 더욱 빛나는 것입니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십이오. 반드시 왕께서 부르실 것입니다.” 우맹은 돌아와 그날부터 손숙오가 평소에 입고 지내던 의관, 신, 칼, 등을 마련하고 성대와 몸짓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일 년 정도 매일 연습한 결과 누가 봐도 죽었던 손숙오가 되살아 난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분간하기 힘들었다.

하루는 궁중에서 장왕이 임석한가운데 연회가 열렸다. 이때 우맹은 다른 배우에게 왕으로 분장하여 손숙오를 사모하는 모습을 짓게 하고, 자신은 손숙오로 분장하여 등장했다. 장왕이 손숙오로 분장한 우맹을 보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손숙오는 별일 없는가? 과인은 경의 생각뿐이다. 과인을 돕도록 하라.” 그러자 우맹이 말했다. “신은 손숙오가 아니옵고 다만 손숙오로 분장만 했을 뿐입니다. 연회 자리에 흥을 돕기 위해 요즘 궐 밖에서 유행하는 노래를 한 곡조 부르겠습니다.” 우맹은 다음과 같이 노래를 불렀다.

탐관 되어 살던 사람, 자손 안정 이루우고.

고결하던 염관들은, 자손 돌볼 능력 없네.

재상이던 손숙오는, 하루아침 죽어지니.

일평생을 청렴 터니, 그의 자손 고생 일세.

손재상을 배워 무엇 할꼬, 왕이 그를 몰라보니.

장왕은 노래를 듣자 숙였던 고개를 들고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말했다. “손숙오의 공로를 잊어서는 안 된다. 장왕은 손숙오의 아들 손안을 데리고 오라고 일렀다. 손안은 거지꼴을 하고 나타났다. 장왕는 미안하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대의 곤궁이 이지경인 줄을 몰랐다. 이것은 과인의 불찰이다.” 하고 만호의 읍에 봉하려 하자 손안이 굳이 사양을 하며 척박한 400여 호의 침구 땅를 요청하였다.

침구 땅은 척박하여 다른 사람들이 욕심내지 않는 곳이므로 10대에 이르기까지 후손들이 끊기지 않고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 이것도 손숙오가 죽기 전에 아들에게 유언으로 했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 <골계열전: 코미디 이야기>에 나오는데 우맹이 손숙오 처럼 분장했다고 해서 우맹의관 이라고 한다. 청렴하게 살면 후손들도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TV 예능프로에 보면 성대모사를 아주 잘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착각할 정도다. 2천500년 전 일인데 그 당시에도 해학과 웃음은 있었던 것 같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얼굴을 묻는다면 웃는 얼굴 이라고 할 것이다. 웃으면서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경일 회사원 (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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