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편집위원장

어지럽고 소란스럽다. 나라 안도 바깥도. 나란 안은 첫째, 일제가 물러간 이후 72년 간 쌓인 적폐 때문이다. 둘째, 그 적폐의 청산 때문이다. 나라 밖은 중국과 미국의 충돌과 북한의 핵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나라 안 상황을 헤쳐가기도 벅찬 판에 미국과 중국의 패권이 충돌하는 지점에 끼인 신세다. 오랜 동안 미국의 우산 아래서 앞만 보고 달렸다. 살만 한 나라가 됐다고 한숨 돌렸다. 홀로서기를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017년 갑자기 지구촌에서 가장 전쟁 위험이 높은 나라, 불안한 나라가 돼버렸다.

우리에게 닥친 상황을 외부 탓만으로 돌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될 수도, 되지도 않는다.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저 급한 불만 끄려 허둥대다가는 조선의 마지막과 같은 결과를 맞게 된다. 상황에 따라 적당히 넘기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진통제 효과 밖에 없다.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악화될 뿐이다.

왜 잘 나가던 한국이 이지경이 됐는가? 문제의 뿌리는 남북분단이다. 분단이라는 암보다 치명적인 상황을 망각했다. 미국이라는 ‘의사’를 너무 믿었다. 국제 정세는 변화무쌍하다는 역사의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살지 않았다. 대한민국이 어느 지점에 어떻게 서 있는가는 잊은 채 적당히 살았다. 경제적 성취감에 도취돼 흥청망청 했다. 북한이나 중국을 ‘못 사는 나라’ 정도로 취급했다.

돌아보면 지난 사반세기 동안 중국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자국의 존립 기반을 다졌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등소평)면서 자세를 낮추고 경제 성장에 ‘올인’했다. 한국인들의 콧대를 세워주며 ‘달러’를 빨아들였다. 한국 관광객들이 중국에 뿌린 ‘달러’는 한국에 독이 되어 돌아왔다. 한국의 ‘달러’는 중국을 한국 정도는 무시해도 되는 나라로 만드는 데 적잖은 역할을 했을 것으로 믿는다.

한국이 마음껏 무시하던 중국은 이제 한국을 마음껏 무시하고 있다. 머리를 조아리고 따르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미국을 따를 것이냐 중국을 따를 것이냐를 묻는 것이다. 우방을 넘어 혈맹으로 믿었던 미국에게서 한국의 생존에 대한 의무감은 찾아볼 수 없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정책이 언제 ‘너 알아서 하세요’하고 돌아설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한국의 안보는 안중에 없고 한국을 상대로 돈벌이에 나섰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안팎곱사가 된 우리 신세는 그야말로 파도에 흔들리는 일엽편주다. 내 나라 지켜주지 않는다고 미국 탓 할 수도 없다. 바로 옆에서 압박해 오는 중국을 무시할 수도 없다. 벅차다. 거기에 김정은의 핵 위협은 멈출 것 같지 않다. 국민들로서는 정말 너무 혼란스럽다. 불안하다. 과거 권력을 누렸던 보수 정객은 비상용품을 갖춘 지하 벙커를 집안에 만들어 놓고 핵 공격에 대비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다행인 것은 대다수 국민들이 동요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 불안으로 인해 경제가 요동치는 것을 막아주는 힘이다. 정치권이 어떤 해법도 내놓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다. 위기일수록 한데 뭉쳐 헤쳐 나가야 한다. 정치권이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북핵은 물론 중국이나 미국 보다 국내 정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정치 공방만 있고 위기 극복을 위한 논의는 없다. 국가와 민족의 장래 보다 정쟁에 매몰된 형국이다.

머리를 맞대고 국가적 위기를 돌파해도 벅찬 시기다. 한가하게 정치 공방이나 할 시국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에 위기를 물려준 것은 야당이다. 야화된 외교력도, 남북간 대화 단절도 모두 야당이 물려준 적폐다. 야당은의 존재 가치는 대안을 제시할 때 빛난다. 다시 존재감을 회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여당이 앞장서서 위기를 넘어야 하는 것은 의무다.

조일근 편집위원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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