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상단은 고려대에서 부터 19세기 후반까지 우리나라의 경제를 좌우하던 유서깊은 기업가 그룹이다.

괜한 명성은 아니었다. 상단을 이끈 개성상인들은 한국 자본주의의 원형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아 아닐 정도로 혁신적인 경영 시스템으로 당대의 상권을 장악했다. 현대 경영에서 사용되는 기법들을 그들은 이미 사용하고 있었다. 보증인을 두고 신용에 따라 금리를 차등 적용하는 시변제를 활용했고, 오늘 날 복식부기의 기원이 된 사개치부법이라는 회계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개성상인의 우수한 점은 상도라는 가치를 세워 서로 지켰다는 점이다. 제 분수를 지키고 바른 상품만을 팔며, 서로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상도덕을 유지했다. 이러한 조선형 길드정신이 곧 중국 등 대국의 상업자본에 맞서 자국의 경제를 지키는 호국경제의 온실이 된 셈이다.

개성공단이 남북경협의 근거지가 된 데는 그만한 내력을 지니고 있기에 가능한 일 이었을지도 모른다. 민족경제의 모태적 기능을 했다는 점도 유사하다. 공업자본이 해외로 유출되는 대신에, 값싼 인건비로 남북한이 서로 경제협력을 통한 상생의 재부를 일궈냈다는 것은 개성상인들의 지혜(상도)가 발현됐다고 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북의 미사일 실험에서 비롯된 남북한의 정치 갈등으로 얼마 전 개성공단이 폐쇄됐다. 애써 만든 완제품들을 챙겨 올 틈도 없이 귀경해야했던 기업들의 피해가 수조원대에 이른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입만 열면 경제가 어렵다며 국민을 다그치던 정권이 한 일 치고는 앞 뒤가 너무 맞지 않는다.

욍건의 개국 근거지가 송악이었다는 이유로 개성 출신들의 과거 응시를 막은 태조의 억지가 개성상단을 만들어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이제 남북의 억지가 개성공단을 다시 궤멸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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