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원/해룡중 교감

교사 부임 초기다. 1학년 담임을 맡아 설레는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가 우리 반 애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젊은 담임선생님에게 호감이 가는지 모두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 먼저 명렬표를 들고 학생들을 일일이 호명한 후 대답을 하면 얼굴부터 익히려고 애썼다. 다음으로 학급운영 계획을 밝히고 몇 가지 주의사항을 전달하면서 학생들의 동태를 유심히 살폈다. 그런데 한 녀석은 잠을 설치고 왔는지 설명하는 내내 좀처럼 책상에서 고개를 들려고 하지 않는다. 첫 시간부터 화를 낼 수도 없고…

그럭저럭 몇 주가 흘렀다. 매일 아침 조회시간이면 전달사항을 간단히 줄이고 애들에게 유익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나름대로 노력했다. 훈화도 준비하고, 좋은 정보를 제공하거나 간단한 학습과제 제시와 확인, 개별 상담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그런데 녀석이 항상 눈에 거슬렸다. 몸은 늘 축 처져 있고, 눈동자는 약간 풀린 듯이 졸려 보였다. 조회시간이면 인사가 끝나기 바쁘게 엎드리곤 하는 것이다. 고등학생다운 패기나 열정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녀석! 점점 화가 치밀었다.

종례시간이다. 전달사항과 아울러 간단한 훈화를 하고 있는데, 녀석은 역시 책상에 엎드려 있다.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녀석에게 일어나라고 고함을 질렀고, 녀석은 힘없이 일어나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녀석에게 “너 이놈은 피죽 한 그릇도 못 먹었냐? 왜 그리 맨날 쓰러져 자빠져 있는 거야!” 아마 더 심하게 표현했을 것이다. 아무 대꾸가 없다. 너무 힘없어 보여 체벌하기도 어렵다.

녀석이 밉다보니 불러다 제대로 상담도 하지 않았다. 상담한다고 해도 질문에 대해 제대로 답변할 것 같지도 않고, 말이 통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1년이 지나 녀석은 2학년으로 진급했고, 나는 같은 교정 안에 있으면서도 녀석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이후 녀석을 잊고 몇 년을 살았다

녀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5년 남짓 흐른 즈음 나에게 두툼한 편지 한통이 전달됐다. 녀석이 보낸 것이다. 편지를 읽어가면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내용인즉 녀석은 그 당시 끼니마다 피죽 한 그릇도 제대로 먹기 힘든 사정이었지만, 그래도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간절한 바람으로 끼니를 걸러 가면서 학교를 다녔다는 것이다. 눈에 눈물이 고였고 창피하여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담임선생이라는 사람이 학생의 어려운 사정은 살피지도 않고 악담이나 퍼부어 댔으니… 편지 말미에는 그런 말씀을 하신 선생님이 미웠지만 그러기에 열심히 노력하여 이제는 하루 세 끼니는 잘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전답도 장만하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어찌 이 죄를 갚을 수 있을까. 평생 가슴 속에 짐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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