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명 삼동청소년회 영광지구 인성교육 강사

12월이 되자 마무리 해야 하는 일들이 몰아쳤다. 주로 한 해 활동, 회계 등  연말 결산을 하고 자료집을 내는 일들이다. 그러면서 평소에 해야 하는 업무는 그대로 하게 된다. 희한하게 직장에서 일이 바쁠 때는 꼭 가정에서도 아이가 아프다든지, 내가 아프다든지 상황이 어려워지곤 한다. 출근을 하면서 오늘은 이 일, 저 일, 그 일을 해야지 하고 사무실에 가면 어김없이 또 다른 할 일이 생겨나 있다. 퇴근을 하면서 이 일, 저 일, 그 일을 해야지 하고 집에 가면 곧 괜한 일 욕심이었음을 알게 된다.

아이들과 부대끼며 씻고, 밥먹고, 치우고 나면 이불 펴고 잠자기 바쁘다. 아, 바쁘다 바뻐. 왜 이렇게 바쁘지? 이 일들을 어떻게 하지? 언제 하지? 그러다가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다.

그 때 한 번 멈춰봤다. 앗! 경계다. 당장 해야 할 것만 같은 이 일도 잠시 멈추고, 빨리 끝내야 할 것 같은 저 일도 잠시 멈춰놓고, 이번 주 안에 끝내야 하는 그 일도 잠시 멈춰놓고, 눈을 감고, 호흡을 골랐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잠시 그대로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당장 저 일을 안 하면 큰 일 날 것 같았는데, 큰 일이 나지 않았다. 잠시 그렇게 생각도 멈추고, 몸도 멈추고 그대로 머물렀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몸도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아까와 지금은 똑같은 상황인데, 멈추기 전과 후가 많이 달랐다. 멈춘 후의 지금은 조급하지도 불안하지도 스트레스가 있지도 않았다. 다만 지금 해야 할 일이 보이고, 차분하게 그 일을 해나갈 뿐이었다.

한 그룹의 인디언들이 말을 달려 급하게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그 무리 중 한 인디언이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왜 그러시오? 아직 내 영혼이 쫓아오지 못해서 기다리는 중이오. 세상을 살다보면 바쁠 때가 참 많다. 정신없이 이 일, 저 일을 하느라 심장까지 빨리 뛰는 것 같은 때가 있다. 그런데 그 때 잠시 멈추어 볼 필요가 있다. 잠시 멈추어서 ‘지금, 이 순간’에 머물면, 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괴롭기보다, 바쁘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지금 바쁘다’는 생각. 이 생각만 멈추어도 지금 이 순간이 훨씬 여유로워진다.

그럼 도대체 일은 언제 하냐고? 일단 그 바쁘다는 생각, 빨리 내가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그 생각을 멈추어 잠시 지금 이 자리에 머물러 보면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그 후에 내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면, 지금 해야하는 일,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인다. 그러면 그 일을 할 뿐이고, 똑같은 일을 하게 되지만, 멈추기 전에 일할 때의 그 급박하고, 긴장되고, 스트레스 받던 마음 없이,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된다.

내가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쉽지 않다. 순간 순간 바쁘다는 그 생각이 불쑥 머리에 가득차서 ‘아, 힘들다. 이거 언제 끝내지? 이거 끝내고 저거도 빨리 해야 하는데..’하며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지금 이 순간의 나를 괴롭히곤 한다. 그게 심해지면 일의 능률도 떨어지고, 때론 일의 순서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기도 한다.

그래서 놓치더라도 다시 챙기고, 다시 챙겨야 하는 것 같다. 무엇을? 지금! 여기!를. 챙기고 또 챙기다 보면 점점 지금 이 순간을 놓치는 일이 적어지고, 과거에 붙잡히고, 미래에 속는 시간도 줄어들 것이다.

과거에 대한 후회로 나를 괴롭히기보다 지난 일은 거울삼아 앞으로를 대비하는 자료로 삼고,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해하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준비하는 지혜로운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지금 여기에 머무는 방법 중의 하나는 바로 이 주문이다. ‘늘 처음이고, 시작이고, 한번이다.’ 나에게 마음공부를 가르쳐준 선생님 중 한 분이 이런 말을 해주셨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는데, 사람도 1분 1초가 다르다고 한다. 시시각각 세포가 죽고 나고 하는데, 1분 전에 본 그 사람은 이 세상에 없고, 지금 보는 이 사람은 아까 그 사람과 세포 하나라도 달라진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누가 나에게 잘못을 하고, 또 하면 ‘이 놈이 또 그러네.’ 하지 말고, ‘아, 이 사람도 원래는 그럴 것도 안 그럴 것도 없건마는 경계(마음에 요란함,어리석음,그름을 일으키는 다양한 외적,내적 상황들)를 따라 지금 이렇게 행동하는구나!’하라고 하셨다.

나도, 저 사람도 원래 경계따라 그런 것이지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님을 알자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 아이들에게 적용해봤다. 아이들이 투닥투닥 다툰다.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는데 또 투닥투닥 다툰다. 그만하자. 살살하자. 좀 조용히 하자. 몇 번 이야기를 하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화가 폭발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버럭 화를 내고 나니 왠지 내 모습이 부끄럽고 왜 그랬을까 후회가 된다. 집에 돌아와서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지 하고 방에 들어와서 누웠다. 잠시 자고 일어나 거실로 나오니 아이 둘이 오가는 말의 분위기가 슬슬 다시 한 판 붙을 기세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 ‘또 시작이다. 또!’  경계다! 일단 멈추고, 주문을 외운다. ‘늘 시작이고, 처음이고, 한번이다.’ 아까 싸우던 아이들은 이미 없다. 세포 하나가 변해도 수십번 변했다. ‘또 시작이고’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원래 싸우는 아이들이 아니고, 지금 이 순간 경계따라 말이 세게 오가는 것이다.

이렇게 주문을 외우며 아이들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달라진 줄은 모르겠는데, 지금 내 마음은 아까와 다르다.

흔들릴 듯 말 듯, 움찔할 듯 말 듯. 화가 날 듯 말듯 나지 않는다. 움찔움찔 하는 내 마음의 움직

임이 느껴졌다. 내가 중심을 잡고 있으면 주변 상황에 쉽게 요란해지지 않는다. 경계따라 일어난 마음에 확 쏠려가면 나를 잃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성을 잃고 화를 내는 경우가 그렇다.

‘화’에 취해 있다가 깨고 나면 후회하거나, 그런 나를 감추기 위해 내가 화낸 대상에게 너가 잘못해서 내가 그랬잖아 하고 더 크게 화를 내곤 한다. 일단 멈추고, 나도, 너도, 우리도 늘 시작이고, 처음이고, 한번이다 하였더니, 내 마음을 바라보게 되고, 화를 내는 나도, 싸우는 아이들도 경계따라 그럴 뿐이지 원래 그런 아이들이 아님을 알고 중심을 잡고 지켜볼 수 있었다.

우리 마음공부 선생님의 비법. ‘늘 시작이고, 처음이고, 한번이다!’ 덕분에 나는 지금 이렇게 평화롭게 글쓰기를 마무리하고, 우리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 명은 엄마 식사 준비를 돕고, 한 명은 책을 보면서 평화로운 저녁을 즐기고 있다.

때로 경계따라 싸우는 아이들, 때로 경계따라 화내는 나, 모두에게 옳다 그르다 하지 말고, 경계 따라 그럴 수 있음을 알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행복하고 평화로운 새해 만들어 봅시다~

김건명 삼동청소년회 영광지구 인성교육 강사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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