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편집위원장

영광군이 시비공원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가뭄 끝에 단비를 만난 것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일제 강점기에도 문화가 꽃피던 고장 영광이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거의 문화 불모지로 변해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문학과 연극, 음악, 미술 등 향유할 문화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워낙 컸기에 빚어진 현상이다. 문화를 주도했던 조운 시인 등 대다수가 월북한 후유증을 앓아온 것이다.

조운 시인의 시비 하나 세우는 데도 엄청난 갈등 양상을 빚었다. 많은 월북 작가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모두 사상 보다는 작품을 중시했다. 문학관도 짓고 시비도 세우고 문학상도 주는 기념사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영광은 지금까지도 갈등 양상을 빚으며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도 좌우대립의 갈등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극소수 인사들이 길을 터주지 않고 있어서다.

광주를 비롯한 전국의 문인들이 영광 출신 작가들의 인물과 작품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과거의 남도 문학의 1 번지던 명성을 회복하라는 주문도 있다. 안타까운 목소리와 시선은 영광의 아픔이면서 부끄러움이었다. 이제 시비공원 건립이 그 막힌 물꼬를 터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조운과 조남령 같은 빼어난 작가들의 인물과 작품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히 이루어지리라 기대한다.

군은 조선시대 시인들의 시비를 세운다는 계획이다. 찬반 논란을 빚을 근‧현대의 인물들은 배제한다니 안타깝기는 하다. 군산과 서귀포 등에 세워진 시비공원은 국내‧외 유명 시인들의 시비를 세우고 산책길 등을 조성해 많은 발길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역사 속에 묻힌 전근대의 시인들의 시비도 물론 가치가 있다. 하지만 아쉬움을 금치 못한다. 두터운 좌우대립의 프레임을 깨트리지 못하는 영광의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언젠가는 깨야하고 깨어질 벽이다.

무너뜨려야 할 벽을 무너뜨리지 못하는 세월만큼 영광은, 영광 사람들은 문화의 힘을 기르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한다. 삶의 질을 높이지 못한다. 김구 선생은 “오직 강한 문화의 힘만이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남에게 행복을 준다”고 주장했다. 때마침 예술원 회원이며 서울대 교수를 역임한 영광 출신 오세영 교수가 백수 해안도로에 시인들의 수목장지를 만들자는 제언을 했다. 모두 담아내는 시비 공원이 조성되길 빈다.

조일근 편집위원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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