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근 편집위원장

1987년. 나는 실업자였다. 빛나야 할 청춘에 8년째 짙은 그림자가 드린 세월이었다. 5‧18이후 전두환 덕분에 실업자가 됐다. 취직도 했지만 적응하지 못했다. 좋아하는 사람들 꽁무니 쫓아다니다 몸만 상했다. 그야말로 우울한 청춘이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대가다. “부모 잘 만나야 한다.” “배우자 잘 만나야 한다.” “친구 잘 만나야 한다.” 많이 들어본 말들이다. 대통령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 세월을 견뎌보고야 알았다.

영화 ‘1987’은 그래서 차마 마주 하기가 싫었다. 당시의 고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다. 그런데 보고 말았다. 며느리의 “아버님, 영화 보러 가요~”하는 한마디에 넘어갔다. 예상대로 아팠다. 눈물 났다. 중학교 동창생 이름도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다. 1987의 장면들은 어찌 그리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지…. 아들 잃은 이한열 열사 어머니의 모습도 떠오른다. 누구보다 거친 모습으로 시위에 나섰다. 이 열사 보다 더 치열하게.

1987은 잃어버린 나의 청춘을 되살려주기도 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다. 급한 기사가 있으면 기사 작성 이전에 전화통을 먼저 잡아야 했다. 기자들이 고문치사를 시사하는 발언이 나오자마자 그 뒷말은 들으나마나 라는 듯 우르르 가까운 공중전화로 달려가는 모습이다. 전두환의 언론 학살을 경험했으면서도 신문과 기자들이 정권의 행태에 ‘열을 받아’ 달려드는 장면에서는 내 청춘의 피가 되살아나는 쾌감과 감동이 밀려왔다.

‘택시 운전사’의 속편 같은 1987. 그 안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들. 세월도 인물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역사적 과오, 반민주적이며 반국가적인 범죄마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 정권의 입맛을 맞춘 고문 기술자와 직속상관은 물론 처벌을 받았다. 그들은 하수인에 불과하다. 대통령을 참칭한 전두환에 대한 철저한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권의 민낯이 대중 앞에 드러났다. 왜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는가. 아니면 안 하는가. 전두환은 민주공화국 인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의 반열에 올리지 않아야 한다. 국민들이 직접 뽑는 선거를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배’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을 ‘만들어’ 체육관에 모아놓고 자신을 ‘유신대통령’으로 뽑도록 한 방식을 모방해 정권을 잡았다. ‘선거인단’으로 명칭만 바꿨다. ‘셀프 대통령’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 역사에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기록해서는 안 된다. 정권 찬탈자를 대통령으로 남기는 것은 국가적 치욕이다. 공화국 역사의 단절기로 기록하는 것이 옳다. 제2, 제 3의 전두환의 출현을 막기 위해서다. 그것이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이다. 청산이다. 친일 행적을 청산하지 못했기에 일보군 장교였던 박정희가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다. 그의 후배‘ 전두환이 정권을 찬탈할 수 있었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25년 세월은 모두 ‘1987’이었다. 청산하지 않으면 우리 역사는 바로 설 수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문재인 정권의 청산 의지를 모독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무엇이 두려워 ‘청산’을 보복이라고 하는지 묻는다. 구린 구석이 없다면 깨끗한 나라로 만들자는 데 반대할 명분도 이유도 없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의 맥을 잇는 홍준표가 막말을 쏟아내며 문재인 정권을 비난할 수 있는 것도 ‘청산’의 역사를 쓰지 않아서다.

깨끗이 청산하고 새롭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물려주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의무다. 홍준표의 막말은 보수를 가장한 적폐 세력의 궤변이다. 결코 건전한 보수 세력의 주장은 아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건강한 보수가 있어야 진보도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 국가의 발전은 정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박정희에서 박근혜 까지 이어진 세력은 보수가 아니다. 보수를 가장한 독재 세력일 뿐이다. 국민적 자각이 절실하다.

조일근 편집위원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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