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만 되면 늘 나오는 얘기가 한국의 정치발전이다. 여야, 이당 저당을 가릴 것 없이 정치발전을 위한 분골쇄신을 다짐하며 표를 호소한다. 그러나 필자만의 생각인지 모르지만 한국의 정치발전, 그다지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편만 갈라지면 욕하고, 공약이라고 내세워봐야 지키면 다행이고 안 지켜도 그만이다. 정치인들의 교양이나 인성 수준 또한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의 그것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막말에 성추행에 불륜에 사무실 직원 인건비 따먹기까지 그 죄목도 치졸하다. 정치자금이나 선거법 위반 등은 차라리 예사로운 일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보통사람들과 좀 다른 점은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워 할줄을 모른다. 유권자들 입장에서 봤을 때 이중에서도 가장 기분 나쁜 것은 약속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점이다. 공약을 보고 표를 주기에, 공약을 지키지 않는 것은 일종의 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 공약이 아니었다면 표는 필시 다른 상대 후보에게 갔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기를 치고도 유권자 앞에 정중하게 사과를 구하는 정치인을 필자는 아직 본적이 없다. 복지공약을 어기고도 국민 앞에 한마디 말이 없는 박근혜 대통령 같은 경우가 전형적인 사례다.

결국 유권자인 국민을 우습게 보는 이러한 정치인들의 자세가 한국의 정치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의 정치인들은 유권자들 앞에 그렇게 오만할까? 중심을 바로 찌르자면, 그들이 그렇게 무슨 짓을 해도 변함없이 표를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결국 정치인들을 대하는 유권자들의 안일한 태도가 한국 정치발전 저해의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얼마 전 개성공단 폐지에 따른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서 필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전국 대부분 지역의 조사결과는 찬 반 양론이 50%를 전후로 팽팽하게 갈렸다. 박 정권에 우호적이지 못한 호남조차 찬성 여론이 만만찮았을 정도다. 정권의 종북 공세, 색깔론 등 왜곡이 개입된 결과라는 의견도 있지만, 정부 정책에 대해 찬반 여론이 엇비슷한 무게로 나누어졌다는 점은 어쩜 바람직한 결과라 볼 수 있다. 국민들이 그만큼 고심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남지역의 조사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찬성률이 20% 이상 상회하는 70%를 넘어서는 조사치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분단 상황에 민감한 보수 우파가 그쪽에만 집중해있을 리도 없을 테고, 갖은 생각을 다 해봤지만 남은 결론은 하나였다. 영남의 대표적 인물인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한 일이기 때문에 찬성한 것이다.

선거에서 어떤 정치 지도자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것은 탓할 일은 아닐 수도 있다. 지역간에 이를 두고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한다면, 닭이 먼저니 알이 먼저니 하는 무의미한 시비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개성공단 폐지와 같은 국가의 중요한 정책결정을 평가하면서 한 지역이 특별한 고심도 없이 일방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것은 충분히 기형적이다. 해당 지역 출신인 인물의 결정에 무조건 찬성해야 한다는 지역패권주의의 논리야 말로 한국의 정치를 퇴행시키는 가장 심각한 폐악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영남 패권주의를 극복하지 않고는 한국 정치발전도 요원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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