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 토끼 굴에 빠진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를 여행하면서 신기한 일들을 겪는다. 담배 피우는 애벌레, 가발 쓴 두꺼비 등이 등장한다. 저자인 루이스 캐럴이 어린이들에게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펼쳐 또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쓴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1865년 출판된 이 동화의 스토리가 요즘 자주 떠오른다. 2014년 개봉한 안 국진 감독, 이 정현 주연의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와 함께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주인공 수남(이정현 분)이 미쳐가는 이야기다. “사랑으로 모든 걸 극복할 수 있어”라는 말은 돈의 허락 없이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남은 자연스레 사람을 죽이고 미쳐간다. 관객은 그것이 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수남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 두 ‘앨리스’를 생각하며 요즘 내가 앨리스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금치 못한다. 내가 오늘 살아가는 여기가 과연 내가 사랑한 조국 대한민국이 맞는가. 다른 사람들은 그냥 예전과 다름없이 살아가는데 나만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아니다. 내 조국이 이런 나라여서는 안 된다.

내 조국에는 담배 피우는 애벌레가 없다. 가발 쓴 두꺼비도 물론 없다. 그런데 그렇게 이상한 것들이 많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대통령이 그렇고, 국회의원들이 그렇고, 갑질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보인다. 젊은이들은 사랑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는 것이 특별하지 않았다. 그런데 돈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런 말이 아무 의가 없어지는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보인다. 노력도 하고 능력도 갖춰가며 단지 행복해지고 싶을 뿐인 ‘수남’이 사람을 죽이고 미쳐가는 과정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은 과연 정상일까?

‘앨리스’는 이상한 체험을 하는 주인공의 대명사다. 분명 나는, 우리는 이상한 체험에 나선 상상속의 ‘앨리스’가 아니다. 냉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실존인물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비정상이며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미쳐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비정상과 부자연스러움, 미쳐가는 것에 거부감을 느껴야 한다. 그런데 그것들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는 우리는 분명 ‘앨리스’다. 아니, 앨리스 증후군을 앓고 있다.

정당이란 분명 지향점이 같은 정치인들의 결사체다. 현실은 정반대다. 새누리당에는 온갖 ‘박’들이 한데 엉켜 쌈박질하느라 난리법석이다. 더불어 민주당은 친노와 비노·범친노, 중도와 좌파로 갈라지고 동교동과 안 철수, 김 한길에다 정 동영과 손 학규·정 세균의 이름이 붙은 계파까지 한 솥에서 부글부글 끓다 결국 집안이 갈라졌다. 새로울 신자(新)를 붙인 신당이 과연 무엇이 새롭다는 것인지 모를 정도다. 도대체 정당으로서 정체성이 없다.

경제 단체와 노조는 파트너가 아니고 앙숙이 됐다. 정부는 맨날 국회 탓만 하며 세월을 보냈다. 더 이상 국회 탓만 하며 지지도를 유지하기 민망했는지 갑자기 대북 강경책을 들고 나선다. 총선을 앞둔 방향 선회가 민주화 이전 선거철 ‘전가의 보도’로 써먹던 ‘북풍’을 연상케 한다. 생뚱맞게 햇볕정책을 꺼내들었다. 북의 핵과 미사일 공세를 햇볕정책 탓으로 돌린다. 야당들도 덩달아 햇볕정책을 도마 위에 올려 ‘따따부따’다. 총선이 한 달 여 앞인데도 선거구 획정도 못한 주제에.

보수 정당이 ‘민생’을 말한다. 진보 야당은 국보위 출신에게 칼자루를 쥐어줬다. 신당은 이념도 인물도 전혀 새롭지 않다. 모두 좌충우돌이다. 대북 관계는 최소 30년 이상 후퇴됐다. 어느 것 하나 정상적이지 않다. 총선은 이런 것들을 바로잡을 기회다. 그런데 우리는 그 가운데 어느 당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명 정상이 아니다. 모두 답을 알면서도 억지를 부리며 특정 당 선택을 당연시 한다. 답은 ‘정치 잘 할 사람’이다. 우리는 ‘앨리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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