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정월 대보름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아침부터 용암마을이 시끌벅적하다.

마을 노인회 주관으로 당산제가 열린다.

제상 준비는 노인회에서 맡아서 하고

마을 주민들 음식장만은 부녀회에서 책임을 진다.

해마다 가을추수가 끝나면 마을 당산제에 쓰일 볏짚을 마을이장이 준비해 두고 몇 일 전부터 마을 입구에 쌓아 놓는다.

당일 아침 농자천하지대본의 글이 걸린 깃발이 기다란 대나무에 묶여진다.

그 깃발을 마을 입구에 건다. 그것으로 시작이다.

 

동네 스피커에서 노인회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오늘은 정월 대보름 입니다. 마을 당산제를 지내야하기 때문에 마을에 계신 모든 분들은 지금 마을 회관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72가구 100여명 되는 주민들이 하나둘 마을 회관 앞으로 모여든다.

마을회관 창고에서는 장구, 북, 꽹과리, 징 등 국악기들이 1년의 먼지를 털고 밖으로 나온다.

웃음 띤 얼굴들이 하나둘씩 서로 인사를 하면서 먼저 온 사람들부터 한쪽씩 줄을 틀기 시작한다.

 

맨 앞의 사람이 대나무에 꼬인 줄을 돌리기 시작하면 한사람 두 사람씩 그 줄에 붙어 같이 돌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줄 한 줄이 꼬아지고 다른 쪽에서는 새로운 줄이 꼬여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6개의 줄이 틀어지기 시작하면 온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참여를 해야 한다.

화합이다. 그 화합이 경이롭다.

이 마을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해마다 해 왔다.

도시의 옆집사람 얼굴도 모르는 개인화된 사람들보단 훨 정겹다.

여섯 줄이 꼬여지면 동네 부녀회에서 한상 차려나온다. 잠시 숨을 고른다.

돼지고기 한 점 입에 넣고 김치 한 조각 그리고 소주 한잔 마시면서 담소를 나눈다. 어제 만났어도 할 말은 많은가보다.

 

두 개의 줄을 하나로 틀기 시작한다.

3개의 중간 줄이 생긴다.

이 3가닥의 중간 줄을 이젠 하나로 튼다. 모든 사람들이 그 줄을 붙잡고 틀기 시작한다.

세 가닥의 줄이 하나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줄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된다.

 

마을 구성원들 모두 각자 해야 할 일에 대해 알고 있다.

한 가닥의 큰 줄이 만들어 진다.

화합이다. 세 개의 줄이 하나의 줄로 틀어지면서 기어가 맞물려가듯이 그렇게 자기 자리를 잡아 틀어진다.

여자들은 이 줄을 넘어가면 안된다는 믿음을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어 나이든 여자들은 절대 이 줄을 가로질러 넘어가지 않는다. 끝에까지 가서 돌아가거나 줄을 들고 아래로 지나간다.

설날부터 마을마다 마을 굿들이 있었는데 농촌의 많은 마을에서 사라져 버렸다.

두레나 품앗이 등 함께 해야만 할 수 있었던 농촌생활들이 기계화 되면서 옆집의 사람들을 의지하기보다 기계를 의지해 버린다.

 

품앗이 개념이 사라지고 울력이 사라져 버렸다.

같이 노동하면서, 같이 어울어 지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해 주던 그 정들이 사라져 버렸다. 고도의 경제성장으로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면서 이제 시골도 예외는 아니다.

그나마 이 마을은 이런 전통이 유지되고 있는 몇 되지 않는 마을 중 하나다.

 

꽹과리 소리가 나고 흥겨운 농악이 한판 벌어진다. 농악대는 줄의 끝과 끝을 돌고 마을 사람들이 따라 돌면서 춤을 춘다.

농악대와 함께 줄머리가 마을 앞을 돌고 당산나무 아래로 간다. 용암마을엔 4그루의 당산나무가 있고 그중 가장 나이가 많은 느티나무에 줄을 두른다.

 

아래로부터 돌아가면서 위로 감아지고 한사람씩 빠져 나오고 나면 마지막 줄이 가지를 통해 같이 묶어진다.

농악은 흥겹게 울리고 사람들은 어깨춤을 덩실거린다.

제상이 차려지고 제를 지낸다.

제관이 술을 붓고 제를 지낸다.

 

우리네 인간은 너무나 보잘 것 없고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의지하면서

이미 어르신들은 경험에 의해 인간은 아주 나약한 존재임을 안다.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농사는 자연이 짓는 다는 것을 알 고 있다.

그래서 막걸리를 받아놓고 절을 지내는 것이 자못 엄숙하다.

 

해마다 보름이면 용암마을 당산제가 마을 정자 앞에서 열린다.

젊은이들이 자동차, 핸드폰을 만들러 모두 떠나가고 그들의 어머니들은 당산나무 아래서 막걸리를 부어놓고 자식들의 안녕을 위해 돼지머리에 돈을 꼽고 절을 한다.

이제 당산제는 농사 걱정보다 고향을 떠난 아들 딸들의 무사 안녕을 더 빈다.

 

 

제사가 끝나고 마을사람들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점심이 끝나면 윷놀이 판이 벌어지고 그 윷판은 해가 넘어갈 때 쯤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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