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야당의 필리버스터 때문이다. 김광진이라는 청년 비례대표 의원이 40년 만에 DJ의 기록을 깨 일약 뉴스의 초점이 됐다. 국민이 놀랐다. 이어 등단한 은수미 의원이 10시간을 넘기자 더 놀랐다. 가냘픈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그 시간을 버티며 토론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목숨 걸고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정청래는 12시간 가까이 해냈다. 독설가다운 면목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현 정권 들어 정치는 사실상 없다. 정치판과 직업 정치인들만 있을 뿐이다. 정치의 중심이어야 할 국민을 배제한 그들만의 ‘리그’가 계속됐다. 국민은 오직 싸움판을 벌이는 핑계꺼리 에 불과했다. 국민을 빙자해 제 앞에 큰 떡 놓기 위한 다툼으로 세월을 보냈다. 진정한 정치인은커녕 직업 정치인으로서도 낙제다. 직업의식조차 보여주지 못했다.

정치의 기본은 협상이다. 협상 없는 정치는 독재일 뿐이다. 지난 3년 여, 정치판에서 협상이 실종됐다. 오직 자기 고집만 난무했다. 물론 그들은 ‘주장’이라고 강변하겠지만. 1945년 이래 가장 정치력도 없고 주의, 주장도 없는 세월의 계속이다. 정당 정치가 시작된 이래 여당은 가장 여당답지 못했다. 야당도 야당답지 못했다. 사실상 정치 실종이다. 그 책임은 서로 상대에게 있다고 삿대질이다.

‘국민’과 ‘경제’를 위해 법안이 필요한데 국회가 발목을 잡고 있다면서 발을 동동 구르는 대통령. 정말 필요하다면 협상 테이블을 마련해야 했다. 그런데 협상 제안은 없었다. 호통소리만 요란했다. 협상 없는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다. 일방통행이다. 지극히 비민주적이다. 독재적 발상이다. 스스로 독재자가 되겠다는 모습이다. 국회의원을 우습게 아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새누리당 원내대표이던 유승민 의원이 야당과의 협상 활로를 열어갈 때 ‘진실하지 못한 사람’으로 매도해 숨통을 조였다. 국민에게 “다음 선거에서 낙선 시켜 달라”는 선거운동을 거침없이 해댔다.

나는 지금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으로서 마땅히 대통령을 존경한다. 대통령을 무시하고 폄하하면 내 조국 대한민국이 무시당하고 평가절하 되기 때문이다. 역사발전을 위하고, 국민을 위한다면 고집을 꺾고 정치 복원에 앞서달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야당이 집안싸움 하느라 정신을 제대로 못 차리면 여당만이라도 제대로 가동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친박’과 ‘진박’을 미래 권력의 중심에 놓기 위한 시도는 이제 제발 그쳐달라는 읍소다.

40여일 후 총선이 끝나면 대통령의 ‘질타’와 ‘비난’도 약효가 떨어질게 뻔하다. 집안싸움을 마친 야당도 ‘정치’에 몰두하게 된다. 대통령과 상관없이 정치의 시계는 돌아가게 돼있다. 주도권은 대통령에게서 국회로 옮겨간다. 대통령의 의지와 관계없이. 소위 ‘레임 덕’이다. 그걸 막기 위해 누구를 당선시키려고 해도 먹혀들지 않는다. 대구 판세가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더불어 민주당이 시작한 ‘필리버스터’는 목적달성 여부를 떠나 정치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어느 세력에 의해서도 무너지지 않는 민주주의 국가임을 과시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역사는 ‘40년을 후퇴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후퇴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시계를 바로잡은 계기가 됐다고 기록될 것이다. “1점 1획도 고칠 수 없다”는 몰상식한 발언을 하는 국회의원은 대한민국의 수치다.

조일근 편집위원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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