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순덕할매 이야기

며칠 전, 퇴근길 버스 안에서의 일이다.

어디선가 역한 냄새가 온 버스 안을 가득 채워 그렇잖아도 냄새에 민감한 내 신경이 온통 곤두섰다. 누구인지를 찾아내는 것보다는 가방에서 마스크를 찾아 걸치는 것으로 생각을 바꾸곤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버스가 몇 정거장을 쉬며 손님들을 내려주고 어느덧 내가 내릴 곳 근처에 다다를 즈음 버스운전수 아저씨가 큰소리로 말했다. “아따 할매! 오늘도 술 드셨구만이라우 얼마나 많이 마시면 요로케 썩은 냄새가 난다요? 해도 너무 허는거 아니여?” 그러고 보니 운전석 뒤편에 앉아 얼굴이 홍시마냥 주홍빛으로 물들어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대꾸도 못하고 있는 어르신이 보였다.

‘아니! 내가 잘 알고 있는 옆 마을 사는 순덕할매네! 뭔 일이래? 1년 내내 사시사철 돈 버는 재미로 산다는 분인데 어쩐 일로 술을 드셨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순간이었다.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아줌마도 운전수아저씨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빈정거렸다. “어저께도 술이 떡되야서 오던디 오늘도 고주망태네이.. 어째야쓰까이~ 나이 먹어서 저러믄 다른 사람한티 민폐인디 그런 줄을 모르는가비여잉”

순간 내 마음이 서늘해지는 건 왜일까?

사람들은 누군가의 겉만 알지 그 깊은 속은 모르는 법이다. 순덕할매가 얼마나 열심히 헌신적으로 살아왔는지, 지금은 또 얼마나 외롭게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고 있는지 그 누가 알까?

열여섯 어린나이에 가난한 집에 시집와 시부모의 모진 시집살이를 견뎌내고 망난이짓을 하던 무능력한 남편이 일찍 저세상으로 가버렸음에도 좌절하지 않고 묵묵히 3남3녀를 잘 키워냈다. 쉬지 않고 농사일을 하는 틈틈이 이런저런 노동일을 하며 억척스레 돈을 벌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젠 자식들도 모두 결혼하여 자신들의 가정을 이루어 잘 살고 있으니 좀 편히 살아도 되지 않느냐고 말하면 무슨 헛말이냐고 큰소리다. “내가 조금만 움직이면 사방에 보이는 게 돈 인디 돈 버는 맛이 얼마나 좋은지 아냐?”

작년 가을에 만났을 때만 해도 여전히 몸은 조금 힘들어도 하루 일당 7만원을 번다며 몸 성할 때 많이 벌어놔야 나중에 자식들한테 의탁하지 않고 요양원에 갈 수 있다며 하하 웃으시던 할매가 왜 저렇게 엉망으로 자신의 몸을 놓아버린 것인지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동안 돈을 모아놓으면 자식들이 번갈아가며 찾아와 이런 저런 이유를 대고 아쉬운 소리를 하며 몽땅 가져가기를 반복했다. 정작 할매가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할 때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할매의 맘을 많이 아프게 했다. 그 뒤에도 계속 돈이 필요할 때만 찾으며 정작 자식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엔 남 보듯 하는 행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너무 안타까워 자식들에게 다 퍼주지 말고 맛있는 것도 사먹고 자신을 위해 사용하라고 하면 그 돈이라도 쥐어줘야 자식들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볼 수 있다며 씁쓸하게 미소 짓던 할매. 그동안 고생하며 살았으니 노후에는 당연히 보호‧존중 받으며 인간답게 살아갈, 부양받을 권리가 있으니 자식들에게 그 권리를 행사해보라는 내게 자식들에게 못할 짓이라며 고개를 젓던 할매였다,

올 겨울엔 유달리 눈이 많이 와 일거리가 별로 없어 날마다 병원으로 출근해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닌다는 얘길 들었는데 아마 오늘도 아침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 술로 서로를 위로하다가 거나해진 것이리라. 누구하나 반겨주는 이 없는 차가운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일부러 위장을 덥혀주는 술에게 몸을 맡겼으리라.

지금은 날씨 때문에 저렇듯 잠시 휴식(?)의 시간을 보내는 순덕할매도 날이 풀리고 따스해지면 자식들이 손을 벌릴 때마다 힘들게 번 돈을 쥐어줌으로써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이라 자부하며 살아갈 것이다. 앞으로도 몸이 움직일 수 있는 한 쓸모 있는 사람으로 살아남기 위해 낮엔 열심히 알타리작업, 대파작업 등 고된 노동으로 온몸을 혹사하고 밤엔 강한 진통제와 파스로 온몸을 도배하며 끙끙대며 깊은 잠 못 자고 뒤척이다가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일어나 먼 일터로 실어다 줄 봉고차에 고단한 몸을 싣고 기나긴 노동의 시간을 보내는 일과를 되풀이 할 것이다.

“다음에는 술 조금만 마시고 몸 생각도 허고 그러시오” 하는 운전수아저씨의 걱정 어린 잔소리를 들으며 겨우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 꼬꾸라질 듯 서 있는 순덕할매의 모습이 너무도 작고 애처러워 보이는 건 아마도 언젠가는 내게도 다가올 모습이어서가 아닐까?

요즘 세상은 쓸모 있음과 없음으로 편 가르기를 하며 나이 먹은 것이 누구에겐가 짊이 된다는 인식을 하도록 은연중에 세뇌를 하고 있다. 노인들도 스스로를 뒷방늙은이란 말로 자신의 존재를 치부해버리기 일쑤이다.

고령화 문제가 중요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며 독거사(고독사)가 증가하고 있다. 찬란하던 젊은 시절을 다 바쳐 자식들과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어르신들에게 선거 때만 과중된 관심d 썯아진다. 지속적인 관심과 함께 구세대와 신세대의 화합을 위한 정책 발굴, 사회적 인식 변화 등 다방면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아직은 조금 덜 늙은 우리 세대가 미래의 우리 모습이 될 어르신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 드릴 좋은 방법이 무엇일지 함께 고민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정도연 사)영광여성의전화 부설 영광여성상담센터 활�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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