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버림 정 종 선생의 타계 소식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영광은 선생의 높은 뜻과 학식·경륜을 보지 않았다. 외면했다는 표현이 맞다. 학자로도, 교수로도 대우하지 않았다. 단지 늙고 초라한 노인으로 대했을 뿐이다. 조경길·이정연·장진기·이근철 등 몇몇 사람만 선생을 존경하고 모셨을 뿐이다.

하지만 선생께서는 누구보다 영광을 사랑하셨다. 또한 영광이 낳은 걸출한 문인들의 시심(詩心)이 다시 한 번 꽃 피우길 간절히 바랐다.

선생이 꿈꾸는 고향은 ‘문화 영광’이었다. 그리고 정직한 영광이었다. 가진 것 다 버리겠다는 의지를 담아 호를 ‘온버림’이라 했지만 ‘문화’와 ‘정직’에 대한 욕심만은 버리지 않았다.

선생의 ‘문화’는 영광읍 도동리 조 운 시인의 생가 정원 한켠에 시비림(詩碑林)을 남겼다. 선생은 이 시비림을 ‘영광의 작고 시인 11명의 시비 한자리’라고 이름했다. 작고한 시인들의 가족들과 연락, 11개의 시비를 만들어 세웠다.

선생은 ‘시비림’의 배치도와 시, 시인을 소개한 작은 책자를 만들었다. 표지는 ‘영광의 작고 시인 11명의 시비 한자리’다. 손으로 쓰고 컴퓨터에서 출력한 시와 시인 소개, 사진 두 장이 담겼다.

가로 15Cm, 세로 21Cm로 종이를 잘라 만들었다. 선생은 후기에‘우리의 기념비적 작업에 흔쾌히 동참해 주신 아들·딸과 사위들께 깊이 감사하노라’ 로 시작, ‘시비와 함께 불멸의 땅으로 남아 주기를 우리는 님들의 거룩한 뜻을 받들어 빌고 또 빌 것이로다’고 적었다.

선생이 직접 손으로 만든 앞뒤 표지 포함 48쪽 짜리 책자는 ‘정주의 뜻있는 시인들의 모임’ 이 2004년 12월 13일 펴낸 것으로 적혀 있다. 어디에도 선생의 이름은 없다. 책자를 받은 지산서예원 조경길 원장(73)의 호만 적혀있다.

이 책자를 보물처럼 간직해온 조 원장은 이 책자를 공개하면서 “시비림이라고는 하나 너무 초라하다. 현존하는 시인의 시비가 번듯한 가로에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조 원장은 책자에 작은 종을 매달아 주신 것은 항상 깨어있으라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선생은 또 물무산 중턱에 ‘야든이’비도 세웠다. ‘야든이’는 선생보다 열 살쯤 위로 보이는 정직한 일꾼으로 6·25 직후 물무산에서 사망했다. ‘야든이’로 불린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정직한 일꾼의 비를 그가 죽은 물무산에 세운 까닭은 무엇일까. 선생의 깊은 뜻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영광은, 영광 사람들은. 그리고 받들어야 한다.

조일근 편집위원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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