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복잡한 문제일수록 알고 보면 가장 단순한 해법이 정답이라는 의미다. 복잡하게 뒤얽힌 문제들을 가장 간단한 방법을 통해서 가능한 경우가 많음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어떤 사건에 대한 판단이 두 가지 이상으로 엇갈릴 때, 이중 가장 단순한 설명이 정답에 근접 한다는 것이다. ‘단순성의 원리’ 또는 ‘불필요한 복수성의 원리’ 라고도 한다.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가설은 적을수록 좋으며 가설 자체도 단순할수록 좋다는 경제성 원리다. 불필요하게 많은 것들을 가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봐도 좋다.

14세기 영국의 스콜라 철학자이자 프란체스코회 수사였던 윌리엄 오컴(William of Ockham, 1285~1349)의 이름에서 ‘오컴의 면도날 법칙’이라고 불린다. 오컴의 면도날은 피부를 상하지 않게 하면서 수염을 잘 깎으려면 면도날이 예리할수록 좋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오컴은 세상을 구현하는 원인, 설명 등 여러 가지 어렵고 중대한 문제일수록 그에 대한 답이나 이론은 간단하고 명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국의 수학자겸 물리학자인 윌리엄 해밀턴이 자주 언급함으로써 이 같은 명칭이 쓰이게 되었다.

해밀턴은 신학적 원리로 이 개념을 특히 강조 했는데 나중에는 철학과 과학에 작용하는 절약의 원리, 단순함의 원리로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오컴은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논리학을 공부했고,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신학을 공부했다. 초기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았으나 논리적 사유를 치열하게 추구한 나머지 아리스토텔레스를 오히려 부정하기에 이른다. 그는 진리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가정이나 전제들을 모두 잘라버리고 단순하게 하여 사물의 핵심만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명쾌한 이론에 중세 기독교 철학이 지켜왔던 수많은 진리와 가치들이 많이 잘려 나갔다. 그래서 오컴의 철학을 ‘오컴의 면도날’ 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말이 동양에서도 전한다. 의미는 조금 다르지만 대동소이한 말로 ‘쾌도난마(快刀亂麻)’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모 방송국의 프로그램 명칭으로도 쓰는데 단순 명쾌한 결단, 즉 예리한 칼로 헝클어져 복잡하게 뒤엉킨 삼베를 단칼에 잘라 버린다는 뜻으로 어지럽게 뒤엉킨 문제를 빠른 시간에 속 시원하게 처리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말하자면 복잡하게 얽힌 문제나 일을 정면 돌파할 때 흔히 인용해서 많이 쓰이는 말이다.

우리 주위에 보면 일부러 어려운 단어를 구사하며 상대가 이해하기 어렵도록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글도 영어나 어려운 한자말들을 많이 사용하여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말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이유는 대략 상대보다 잘나 보이려고 할 때, 아니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잘 이해 못해서 그러는 경우, 다음으로 가장 나쁜 것은 진입장벽을 쳐서 자기 영역을 보호하려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변호사, 의사, 세무사들이 자기들만 아는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다른 잠재적으로 진입 하고자 하는 자 들을 쉽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위해서가 아닐까?

보험회사의 약관도 보면 비교적 어려운 용어들이 많은 이유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소비자들이 쉽게 약관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해야 나중에 법적인 다툼이 일어난다면 자기들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쉬운 한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자만 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편으로는 ‘오컴의 면도날의 법칙’의 부작용을 염려하여 세상을 너무 단순화시키는 것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사람도 있다.

임마누엘 칸트도 다양성을 지나치게 줄이지 말라고 지적했는데, 이는 곧 한때는 쓸모없이 보여도 나중에 쓸모를 발견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세상을 너무 복잡하지도 않게, 그렇다고 너무 단순하게 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경일 회사원 (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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