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중원을 차지하고, 시간을 벌어 부국강병을 도모한 후, 천하대업을 이뤄야 한다. 책사 사마의가 조조에게 권한 책략이다. 이유도 분명했다. 삼국의 세력이 대등한 상태에서 촉을 치면 오가 견제하고, 또 오를 치면 촉이 배후를 노리기 때문에 지금 당장의 천하통일은 난제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조조는 사마의의 조언을 받아들여 오랜 세월 동안 칼을 벼르다가 훗날 결국 천하를 통일한다. 물론 후대에 이뤄진 일이긴 하지만.

글머리에 난데없이 삼국지의 일화를 꺼내드는 까닭은 새누리와 더민주, 그리고 국민의당이 대치하는 현재의 형국이 마치 삼국지에서 전개되는 구도를 닮았다는 느낌 때문이다. 새누리는 더민주와 국민의당 분열을 부추기고, 두 야당 역시 여당을 공격하면서도 또 상대 당이 양강의 구도로 돋보이면 견제구를 날리는 모습이 그렇다.

그렇다면 문제는 결국 중원 싸움이다. 중원에서 일단 유리한 입지를 마련하면, 세를 확장해 대권에 다가설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다. 사마의가 지칭했던 중국의 중원은 한족 본래의 생활영역인 황하 중· 하류 유역을 일컫는 말이지만, 한국 정치의 중원은 영남과 호남을 제외한 영역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당들이 특정 지역에서 발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지역정치색이 유난히 심각한 우리 정치의 특성상 그나마 중부권과 수도권이 서로의 역량대로 진검승부를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국민의당과 더민주의 호남 각축은 정권교체를 바라는 이들에게 걱정을 안겨주고 있다. 중원 모색을 게을리 하면서 몇 석이라도 얻기 편한 호남에서 사생결단의 다툼을 벌이고 있어서다. 물론 더민주당의 당연한 텃밭이었던 지난 선거를 떠올리면 양당이 치열한 선거전을 펼치는 것은 지역 유권자들 입장에서 진일보한 상황이긴 하다. 그러나 양당 각축 구도를 만들어 준 호남인들의 근본 취지를 망각해선 안 된다.

호남인들이 더민주의 지역정치 독과점 체제를 깨트리고 국민의당이라는 대안 세력의 입지를 마련해준 이유는 다름 아닌 정권교체라는 과업을 이뤄내라는 이심전심의 주문이었다. 호남에 안주하는 묵은 습성을 깨고 서로 경쟁하며 정치 근력을 키운 후 대권 창출세력이 되라는 취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두 야당은 호남의 이런 기대를 왜곡하고 있다. 전국 정당으로서의 세력화를 방임한 채 호남의 맹주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을 뿐이다.

본디 자신들의 안방이라 여겼던 더민주의 호남 사수를 위한 안간힘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념적으로나 태생적으로나 중원싸움을 해야 할 국민의당의 호남 올인은 더욱 실망스럽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당 지지율이 심상찮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도 정작은 그곳에 있는지 모른다. 두 당이 이러한 호남 국지전에만 명운을 거는 싸움을 계속한다면 야권의 분열, 호남의 분열이라는 지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분열의 책임은 두 당이 똑같이 나눠 가져야 할 업보일 수밖에 없다.

호남이 어떤 정당을 선택할 것인가는 너무도 자명하다. 국민의당이라는 새로운 야당을 허용한 처음부터,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선택의 대전제는 누가 정권교체의 과업에 진실로 다가서고 있느냐다. 성공 여부를 떠나서 별로 어려운 주문도 아니다. 그저 호남에서 몇 석을 건지기 위해 악착같이 전력을 쏟아 붓는 모습 보다는 중원을 개척해 전국의 선거 판세를 휘어잡으려는 노력에 호남인들은 방점을 찍어줄 게 분명하다.

정권교체라는 대업을 향해 멀리 보고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정당에 표를 줄 것이라는 얘기다. 너무 센 상대가 있어 중원에서의 각축에 두 야당 모두 힘에 부친다면 호남에서 페어플레이하고 이 신뢰를 통해 중원에서 연대하는 지혜도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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