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두 번, 한글을 배우러 공부방으로 향하는 리엔의 발걸음은 신나고 즐겁다.

문밖을 벗어나자마자 얼굴 마주치는 마을 어르신들께 “저 공부하러가요” 아직도 서툰 한국말로 종달새마냥 조잘대고, 공부방이 있는 읍내로 가는 마을버스를 타면서도 한껏 목소리가 높아진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운전기사님에게 큰소리로 인사하고, 버스승객들 중에 낯익은 사람이 보이면 나이든 어르신은 자연스럽게 ‘엄니’ ‘아부지’이고, 중년층은 ‘이모’나 ‘왕 언니’라 부르며 친근한 표정으로 안부 인사를 하면, 지목받은 사람마다 한마디씩 말대답으로 “공부하기가 힘들지 않느냐” “아이는 잘 크고 있느냐?” “한글실력이 얼마나 늘었느냐?” 나이 먹어서 공부 할랑께 힘들지야?” “열심히 배워야 딸내미 학교 다닐 때 엄마노릇 할 수 있응게 꾹 참고 다니거라” 등등 온갖 덕담과 염려와 격려가 이어지며 순식간에 버스 안이 왁자지껄 훈훈해진다.

민지엄마 리엔은 결혼 이주여성이다.

몇 년 전 동남아시아에서 가난하게 사는 가족을 떠나 조금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장애가 있는 열세 살 연상의 남자를 따라 이 땅으로 삶의 터를 옮겼다.

많은 것을 꿈꾸진 않았다. 자신의 나라보다 좀 더 풍요로운 나라에 가서 그저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두렵지만 막연한 기대로 한 결혼이었다.

남편은 일흔이 넘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시댁에 도착한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한다. 그 당시엔 한국말을 잘 몰라서 무슨 얘기인지 알아듣지 못해 버벅대면 시어머니는 불같이 화를 내서 무척 당황했었는데 옆에 있던 남편은 전혀 도와주지 않고 모른척해서 너무 서운했다고 한다.

시댁에 도착했을 때가 봄이어서 작은 농토지만 농사를 짓는 시어머니를 따라다니며 모종 기르기, 거름뿌리기 등 농사일을 함께 했다. 남편은 농사일 대신 다른 일을 다니며 일당을 벌어왔는데 돈의 관리는 물론 모든 경제권을 시어머니가 가지고 있어 리엔은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허락을 받고 돈을 타서 써야했다.

처음엔 한국말이 서툴러 남편과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말귀를 알아듣고 할 수도 있게 되자 자신이 돈을 관리하고 싶다고 한마디 했다가 난리가 났다고 한다. 남편이 그 말을 시어머니께 그대로 전하자마자 화가 난 시어머니가 악을 쓰며“ 너 데려오느라고 쓴 돈이 얼마인데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것이냐, 돈 맡겨두면 못사는 친정으로 빼돌리려는 수작 아니냐?” 며 펄펄 뛰었다한다. 그때 리엔은 임신 삼 개월째였다.

시집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시어머니는 모든 살림살이를 리엔에게 맡기고 모른척했다. 음식을 만드는 일이 가장 힘들었는데 낯선 음식이 입에도 맞지 않아 처음 몇 개월은 많이 말랐었다고 한다. 다행히 옆 마을에 같은 나라에서 시집온 친구가 많이 챙겨주고 돌봐주어 겨우 적응할 수 있었다.

임신했을 때도 그 친구가 만들어준 고향음식을 먹으며 심한 입덧을 견뎌냈고, 출산 후에는 아기 옷, 장난감, 유모차 등 아기용품들을 물려주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시어머니는 첫손주임에도 아들이 아닌 딸이라 실망이라며, 젖이 돌지 않아 분유로 키워야 했던 아기의 분유 값도 아까워하며 잔소리를 했다.

아기의 백일이 지나자 아기분유와 기저귀를 살 돈 마련을 위해 마을 근처에 있는 떡집에서 육 개월 정도 일을 하였는데, 본래 약했던 몸에 무리가 와 어쩔 수없이 일을 그만둬야했다.

일을 하면서 몸은 고되었지만 여러 사람들과 수다도 떨고 정보도 많이 알게 되어 나름 앞으로 살아갈 것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던 첫 일터였다.

때때로 남편은 멀리 일을 하러 나가곤 했는데 몇 개월 만에 한번 얼굴을 보면 너무 낯설어서, 자신이 아이와 남의 집에 얹혀사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아 슬프다고 했다.

떡집일은 그만두었지만 남편은 여전히 아기와 리엔을 위해 지출하는 것을 싫어해서 아이양육에 돈이 필요해지면 마을 사람들의 농사일도 돕고 공공근로일도 하면서 돈이 모아지면 아이의 장래를 위해 보험도 넣고 친정에도 조금씩이나마 보내고, 가끔씩은 자신을 위한 지출도 하면서, 이제는 남편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노력으로 살아가려고 마음먹었다한다.

시어머니가 아이양육을 전혀 돕지 않아서 아기가 네 살이 되는 올 2월까지 온전히 혼자 육아를 도맡아 할 수 밖에 없었고, 집안일 농사일 돈벌이까지 1인 다역을 하면서 리엔은 한국생활에 점차 적응해갔다.

리엔은 본래 밝고 명랑한 성격이었으나 무뚝뚝한 남편과 시어머니의 심한 잔소리에 주눅이 들어 말수가 줄었었는데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 원래의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특유의 쾌활함으로 힘든 일을 하면서도 즐겁게 해냈고, 처음 본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 먼저 인사를 해서, 이젠 인근마을 어르신들에게 ‘싹싹하고 씩씩한 애기엄마’로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한국말을 잘해야 당당하게 돈도 벌고 대우를 받을 것 같아, 더 늦기 전에 한글공부를 해야겠다며 작년부터 아이를 안고 한글공부방에 다녔었는데, 올해부터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어 맘 편하게 공부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단다.

버스 뒷자리에 앉아서도 공책을 무릎에 펼쳐놓고 밀린 숙제를 하는 리엔, 맞게 쓰고 있는지 잘 봐달라며 꾹꾹 눌러쓰는, 연필 잡은 그녀의 손이 참으로 야무지다.

열심히 공부해서 한국말이 능숙해지면 아이도 잘 키우고, 돈도 많이 벌어 가난한 친정도 돕고, 본인이 힘들었을 때 도움 주었던 옆 마을 친구처럼 자신도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라는 그녀, 그녀의 소망이 곧 이루어리라 기대해 본다.

정도연 영광 여성의전화 활동가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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