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기 전부터 음주를 해왔죠?”

“여자가 모텔에는 왜 따라갔나요?”

성폭력 재판 중 실제로 판사, 혹은 검사에게서 나온 발언이다. 성폭력범죄 등 사건의 심리ㆍ재판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규칙 제 2조 (보호와 배려)에는 “법원, 검사, 피고인 또는 변호인 그 밖의 소송관계인은 심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권과 특성을 배려하고, 당해 사건과 무관한 피해자의 사생활에 관한 신문 또는 진술이 이루어지거나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 또는 공포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사생활을 들추고, 잘못된 통념을 앞세워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일삼는 사례가 종종 드러나곤 한다. 법원은 피해 사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모든 요소를 배제하고 가해자의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내려야 함이 당연하지만, 상당 수 성폭력 피해자들이 재판 중 일어난 2차 피해로 씻을 수 없는 고통을 떠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비단 법원 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성폭력 뉴스를 접하는 우리 사회의 시선 또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향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피해 당시 짧은 치마를 입었었는지, 너무 늦은 시간에 외출한 것은 아닌지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피해자가 지금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지 아니면 그 전과 같은 일상을 살고 있는지를 묻기도 한다. 이러한 질문을 토대로 우리 사회는 피해자를 정말 ‘피해자다운 피해자 상’에 부합하는지 검열하는데, 이는 마치 가해자에게 약간의 당위성을 제공하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밤늦게 길을 건너던 행인이 신호위반을 하던 차에 치였다. 이 행인에게 그러게 왜 밤늦게 횡단보도를 건넜느냐, 사고의 책임이 당신에게도 있는 것이 아니냐며 질책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가 왜 그 시간에 길을 건넜는지조차 궁금해 하지 않을 것이다. 피해자를 마주하는 우리는 그가 입은 몸과 마음의 상처를 어서 극복하기를 바랄 것이고, 그에게 상처를 입힌 가해자 처벌에 대한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또한 이와 같아야 한다. 모든 초점은 가해자를 단죄하는데 맞춰져야 한다. 피해자를 탓하거나 의심하는 모든 언행이 2차 가해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피해와 관련 없는 피해자의 사생활은 가해자 양형에 어떠한 영향을 끼쳐서도 안 된다는 인식이 보편화되어야 할 것이다.

미투(#metoo)운동을 통해 각 계에서 성폭력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임에도 그들이 그동안 음지에 숨을 수밖에 없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2차 가해이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성폭력에 대한 ‘피해자 유발론’이 만연하다. 용기를 내어 미투에 동참한 피해자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순간 그에 대한 2차 가해가 시작되고, 피해자는 다시 음지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밖으로 나와 목소리를 내준 그들 덕분에 우리 사회는 피해자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성폭력 근절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이제 우리가 그들의 외침에 응답해야 할 차례이다. 이미 일어난 피해를 없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울 수 있도록 돕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수많은 우리들의 위드유(#withyou)이다. 그릇된 통념에서 비롯된 의심을 거두고 성폭력 피해자를 향한 지지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그들에 대한 2차 가해를 멈추고 성폭력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는 씨앗이 될 것이다.

연일 계속되는 미투를 바라보며 너무나도 다양한 성폭력 가해자가 숨어있었다는 사실에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쳐 대한민국이 성폭력 피해자를 편견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격려하는 사회가 되기를,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성폭력 없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남효진 영광 여성의전화 활동가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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