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빛나 영광 여성의 전화 대표

며느리를 성폭행한 70대 남성 A씨가 감형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다.

28일 서울고법 형사11부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친족 관계에 의한 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5년,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80시간을 명령했다.

A씨는 아들이 숨진 뒤 1년 9개월 동안 며느리를 20차례에 걸쳐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며느리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자 낙태 수술을 받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이같은 자신의 범행을 숨기기 위해 며느리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야구방망이로 위협하고, “어머니에게 말하지 말라”며 폭행한 혐의도 받고 있다.

재판부는 "피고인(A씨)이 비록 고령이지만 아들이 죽은 후에 며느리를 성폭행하는 등 여러 차례 고통을 준 것은 대단히 죄질이 좋지 않다"고 판단했으며, "항소심에서 피해자와 합의를 한다고 해서 기간을 충분히 줬지만 합의가 안 됐다"라고도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피고인의 죄는) 법정형이 7년 이상의 죄지만 피고인이 시골에 살면서 5000만원을 공탁했다"며 "피고인이 깊이 반성하고 있고, 손자·손녀를 돌봐야 하는 사정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를 저버린 인면수심의 범행"이라고 했던 A씨가 감형을 받았다는 소식은 그동안 우리가 무수히 받아왔던 도덕과 윤리교육을 ‘현실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그저 이상적인 교육’에 불과하게 만들었고, 과연 이 사회에 정의와 권선징악이 존재하기는 하는지 의구심이 들게 하였다.

이처럼 공탁금제도로 인해 감형된 사례는 과거 조선대 의학전문대학원에서 벌어진 데이트폭력 사건 재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조선대 의학전문대학원에 다니던 C씨(35)는 2015년 3월 28일 오전 3시10분께 당시 여자친구였던 D씨(31)의 집에서 자신과의 전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찾아와 D씨에게 욕설을 하며 뺨을 수차례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 흔드는 등 2시간 이상을 폭행해 전치 3주의 부상을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2016년 11월 광주지법 제1형사부는 18일 상해 혐의로 기소된 C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 800만 원을 선고했다. 앞서 1심은 C씨에 대해 벌금 1200만 원을 선고한 바 있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피해자 D씨가 가해자 C씨에 대해 엄하게 처벌해 줄 것을 탄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감형한 이유에 대해 “C씨가 이미 의전원에서 제적됐고, D씨에게 1000만 원을 추가 공탁하는 등 정상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현행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에 따르면 살인·성 범죄의 경우 피해자 또는 유족이 처벌을 원하지 않거나 피고인인 가해자가 합의에 준할 정도의 상당한 돈을 공탁한 경우 형을 낮추는 요소로 고려한다.

이 같은 형사공탁은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피고인이 피해자에 대한 반성이나 배상 의지를 표현하는 제도로 형사 사건에서 형을 낮추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법원은 공탁으로 피해배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공탁금을 양형에 참작하고 있다.

문제는 피해자에게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준 피고인이 피해자와의 진정한 합의 노력 없이 자신의 형을 낮추기 위해 일방적으로 공탁을 이용하는 것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사례처럼 피해자는 가해자와 합의를 하지 않았지만 공탁금을 냈다는 이유로 피고인들은 모두 감형 받았고 피해자와의 합의 없이 감형이 이뤄지면서 피해자는 또 다른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다.

‘피해 회복을 위한’, ‘진지한 노력’, ‘자신의 범행에 대하여 뉘우치고’...

위 ‘처벌불원’ 양형기준에 대한 판단의 핵심은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이다.

그리고 그 노력에 대한 요구와 평가, 결과로서 처벌불원의사를 밝힐지 여부는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에 기반 해야 한다. 단지 합의금이나 공탁금의 액수나 그것이 지급되었는지 결과만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합의와 공탁제도가 피해자의 피해 회복이 아닌 가해자의 처벌 면피 수단으로 전락한 현실에서 합의와 공탁은 피해자에게 가해자에 대한 ‘용서’를 강요하고 피해자가 ‘용서’하면 국가가

처벌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책의 결과를 낳고 있으며 또한 피해자가 합의를 하지 않을 시 피의자 스스로가 돈을 내고 자신의 죄를 감형 받을 수 있는 상황으로 형사범죄에 있어 당사자 간에 ‘합의 및 공탁’과 관련한 사법처리 전반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다.

법원이 피해자의 의사와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을 채 공탁을 냈다는(피해자의 공탁금 수령 여부 상관없음)이유만으로 양형기준이 달라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전형적인 표상이 될 것이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도,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죄를 지었으면 응당 책임을 지고 그만큼의 벌을 받아야 하며, 그 벌은 무엇으로든 대신 하거나 사면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가 온전히 살아나고 이루어져야만 우리의 미래세대에게 옳고 그름, 참과 거짓에 대해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박빛나 영광 여성의 전화 대표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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