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균 영산성지고등학교 교감

주말에 오랜만에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뵈러 갔다. 저녁 식사 후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아버님이 너희 학교는 ‘도전 골든벨’ 프로그램을 왜 하지 않느냐고 물으신다. 일요일 저녁이면 으레 즐겨보는 프로라며 모 학교는 마지막 문제를 애석하게 틀리는 바람에 보는 당신께서 안타까웠다는 말씀까지 하셨다.

어린 시절 일요일 아침이면 아버지와 함께 ‘장학퀴즈’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보았던 기억이 났다. 전국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각 교과의 주요 내용으로 출제된 문제를 푸는 프로그램이었다. 도전 골든벨 프로그램 역시 약간 포맷이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교과 지식 중심의 단순 암기형 실력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우리 학교는 학생 수가 너무 적어 정규 방송사 프로그램을 촬영하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핑계로 출연하지 못한다고 해명하였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여러 가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물론 우리 학교에 재학 중인 아이들의 대부분은 일반학교 학생들에 비해 교과 지식이 상당부분 부족한 학생들이다. 실제 그 프로그램을 본교 학생들이 참여할 경우 초반에 대부분 탈락할 것이지만 그 이유 때문에 아예 참가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감히 말하고 싶었다.
산업화 시기 우리 학교의 궁극적인 교육 목표는 지식 습득이었다. 암기하고 또 암기하고 지면에 표현된 문제를 통해 정량화된 결과로 경쟁에서 뛰어난 결과를 얻는 것이었다. 그 시절 대기업의 후원을 받아 큰 액수의 장학금까지 상금으로 걸고 많은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TV 프로그램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리 유쾌한 일만은 아니다.

지금은 산업화 시대도 아니고 암기된 지식의 양을 평가하는 시대도 아니다. 본교의 아이들은 스스로 계획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함께 공감하는 생활을 중요하게 여긴다.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소요되는 시간은 오래 걸린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수업의 양은 일반학교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고 축적된 교과 지식의 양은 적게 보일 수 있다. 흔히 기초학습 능력 부족을 걱정할 수 있다. 하지만 본교를 거친 대부분의 졸업생들은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아주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사람과디지털연구소 구본권 소장은 『로봇시대, 사람의 일』에서 ‘자동번역 시대,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영어공부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단순히 영어 시험 점수를 잘 받기 위해 공부를 할 필요는 없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질문을 던지는 태도,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것을 스스로 해석하고 배울 수 있는 능력’이라는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오히려 더 강조되고 있다.

한 무리의 집단에게 갈등 상황을 조성케 한 뒤 얼마나 슬기롭게 갈등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지, 집단 내 특정인의 아픔에 공감함으로써 얼마나 빨리 회복할 수 있게 도와주는지 등을 테스트하는 교육관련 프로그램이 있다면 본교의 학생들이 얼마든지 출연할 수 있을 텐데….

하승균 영산성지고등학교 교감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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