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 영광여성의전화 활동가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

지난 5월 11일 시작되었던 청와대 국민청원 제목이다. 이에 5월 21일 ‘청와대입니다.’에서 여성가족부 장관과 경찰청장이 참석해 이 청원에 대한 답변을 내놓았다. 이 자리에서 이철성 경찰청장은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이며,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한다는 청원에 대한 동의가 일주일 만에 40만 명을 넘어선 상황이 경찰 수장으로서 큰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그동안 불안에 떨고 상처받은 여성들에게 죄송한 마음이다” 그리고 경찰은 “성폭력 사건의 경찰 조사과정에서 불거지는 2차 피해와 관련, ‘피해조사 표준매뉴얼’도 개발하고 있다.”고 하면서 “2차 피해 당사자들을 직접 면담, 과거 문제점도 분석하고 외국사례 조사도 하고 있으며, 앞으로 경찰 내 성인지 교육을 강화하고 표준매뉴얼에 따른 조사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할 경우,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고도 말했다.

이 청원의 발단은 홍익대학교 누드 크로키 수업에서 발생한 남성 모델에 대한 불법 촬영 사건이었다. 여성인 범인은 사건 발생 약 1주일 만에 검거됐고 조사결과 피의자가 되어 구속수사를 받는 등 지금까지 몰래카메라에 의한 남성들의 수많은 불법촬영 범죄와는 확연하게 다른 수사 진행속도를 보여 놀라울 정도였다. 이에 분노한 여성들이 6월 9일 오후 3시에 서울시 종로구 혜화역 부근에서 경찰의 ‘성(性)차별 편파수사 규탄 시위’를 진행 한 것이다. 포털 ‘다음’ 카페에서 결성된 여성단체 ‘불편한 용기’의 이 집회는 이 날 경찰 추산 1만5000여명(주최 측 추산 2만2000여명)이 집결했다. 이들은 “몰카를 찍는 사람도, 올리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구속수사 해야 한다”며 “피해자를 죽이는 몰카 판매, 유출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달 1차 집회에 이어 2차 집회까지 1만 여명이 훌쩍 넘는 많은 여성들이 모인 이유는 무엇일까? 사건의 과정과 내용을 잘 모르는 이들은 범인을 신속하게 구속 한 것도 잘못이냐 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압도적으로 여성피해자가 많은 유사사건에 대해 우리 법원이 어떻게 대처하였는가를 보면 이번 청원과 집회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본다.

지난 해 내 놓은 ‘대검찰청 2017 범죄 분석’에 따르면 2016년 카메라 등을 이용한 불법촬영 범죄로 검거된 사람 5249건 중 기소된 사건은 1716건, 이 중 구속 된 사건은 154건에 불과하다. 이는 수사(여성피해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불법촬영사건)를 지휘하는 검찰의 수사방식에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검찰은 불법촬영에 대해 철저한 압수수색을 하지 않는다. 법원도 가해자들에 대해 위중하게 처벌하지 않는다. 그러나 홍대 누드 크로키 불법촬영 사건처리에서 볼 수 있듯 수사를 ‘못하는 것’이 아니고 피해자가 누구냐에 따라 수사를 ‘안 하는 것’이라는 것에 여성들이 분노하는 것이다. 법은 모든 국민에게 공정하게 적용돼야 한다. 그가 여성이건 남성이건 죄를 지었으면 그 죄에 합당한 합리적인 처벌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뿐만이 아니다. 불법촬영이 아닌 합의에 의한 촬영일지라도 그건 촬영을 허락 받은 것이지 그 영상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인터넷상에 게시해도 됨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엄연히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생각지 않은 곳에서 나의 사진이나 영상이 나와는 무관하게, 나의 동의도 없이 떠돌아다닌다면 그리고 악용되고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나 현실은 몰래 촬영한 영상물의 소유권이 영상 속 인물이 아닌 촬영자에게 있다고 법원은 해석하고 있다. 내 사진이 내가 아닌 나를 찍은 사람에게 소유권이 있다니 그래서 가해자를 압수수색 할 수 없다니 결국 법은 피해자보다는 가해자와 더 가까운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법은 인간이 만들었다. 인간은 결코 완벽할 수 없는 것처럼 법도 완벽할 수 없다. 문제점이 발견되면 법은 재정비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법을 집행하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들은 그 법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정비에 들어가는데 너무 더디다. 그 사이 목숨을 잃는 피해자도 생기고, 삶이 피폐해져 더 이상 살아갈 이유나 희망을 찾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연명하는 피해자도 생길 것이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다.

이 말은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해야 할 뿐 만아니라, 모든 법이 국민들을 공정하게 대해야함을 뜻한다.

2018년 4월과 5월.. 남북의 두 정상이 만났고, 세계는 바야흐로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는 설렘으로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평화의 시대 서막에 당사국인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주체자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분단 70년, 이제 남과 북은 서로를 자극하지 않는 범위에서 상생의 길을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세계에 우뚝 설 것이다. 그러나 이 거국적 흐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여성과 남성으로 편을 갈라, 서로 상생하는 관계가 아닌 대립하고 갈등하는 관계로 내몰리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갈림이고 대립인지 이제 우리 모두 깊이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여성과 남성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 이 땅에 태어났다. 남과 북이 서로 화해하고 협력의 몸짓을 보내는 것처럼 여성과 남성도 이제는 평화로운 상생할 길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이성을 지닌 생명이며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인간’임을 기억하면 좋겠다.

김원 영광여성의전화 활동가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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