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빛나 영광 여성의 전화 대표

얼마 전, 회원들과 함께하는 영화소모임에서 「미씽 : 사라진 여자」을 상영한다는 공지를 받고 개봉 당시 무척이나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보지 못했었기에 들뜬 마음을 안고 소모임에 참여해 관람하는 시간을 가졌다.

영화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지선’(엄지원)의 아이 보모인 ‘한매’(공효진)가 아이를 데리고 사라지면서 빠르게 전개된다.

남편과 이혼 후 혼자 아이(다은)를 키우는 워킹맘 지선은 바쁜 회사 일로 아이에게 온전히 신경을 쓸 여유가 없어 보모인 한매의 도움을 받아 일과 육아를 함께 병행해 나가고 있다.

때문에 지선에게 있어 한매는 그저 보모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보모 이상의 가족과 같은 존재였고 한매 역시 지선의 아이를 마치 자신의 아이처럼 온 애정을 다해 돌봄으로써 상호보완을 이루는 듯 보였다.

평화로운 날들이 지속될 것 같은 어느 날 바쁜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선은 늦은 시간까지 아이와 한매가 돌아오지 않자 단순 외출이 아님을 확신하게 되고 아이와 한매의 행방을 미친 듯이 찾기 시작한다.

그러나 한매를 소개해 준 사람도, 심지어 가지고 있던 한매의 신분증도 위조된 것임을 알게 되고 막다른 벽에 마주했다고 생각하던 그때, 자신의 집 앞에서 서성이던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남자를 마주하게 되고 그가 주는 정보를 가지고 한매의 과거를 조금씩 파헤쳐 간다.

알면 알수록, 찾으면 찾을수록 모든 것이 거짓이었던 한매의 숨겨진 진실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는 지선.

한매는 한국의 농촌 남자에게 시집 온 외국인 며느리로 가부장적인 시어머니와 엄마 말만 듣고 아내를 지켜주지 못하는 남편 때문에 집에만 갇혀 지내다 임신을 하지만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구박을 받고 아이가 아파 큰 병원에 가야하는 상황에서도 치료를 해주지 않는 가족들에게 엄마인 한매는 끊임없이 도움을 청하며 울부짖지만 가족 중 그 누구도 한매의 소리를 듣지 않는다.

한매는 아이(재인)를 살리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나와 따로 살며, 병원에 입원시키지만 그 조차도 한국국적 보호자인 남편의 동의가 필요해 지옥 같았던 남편에게 다시 연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고, 아이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시작한 성매매로 번 돈을 남편에게 바치면서까지 겨우 보호자 허락을 받아 입원을 시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쌓여가는 병원비에 자리를 빼라는 독촉을 받게 되고 한매는 장기매매를 통해 자신의 간을 팔아 돈을 마련하려고 하지만 돈을 가져오기로 한 날 지선의 아이가 급작스레 아프게 되고 의사인 지선의 남편 지시로 수납이 밀려있던 한매의 딸 제인의 침대를 빼게 된다.

결국 병원에서 쫓겨난 한매는 딸(재인)을 데리고 비좁은 단칸방에서 지내다 아픈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가던 중 아이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는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지선의 끈질긴 추격 끝에 중국으로 가는 배 안에서 바다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한매와 자신의 딸(다은)을 발견, 자신이 아이 대신 죽을테니 아이만 살려달라고 하는 지선의 간절함에 결국 한매는 지선에게 아이를 넘기고 바다를 향해 몸을 던진다.

이 영화는 우리 사회가 앗아간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가부장사회에서 여성은 그 어떤 지위에 있다 할지라도 목소리 없는 현실을 벗어나기 어려우며, 한매와 지선의 삶이 첨예하게 다르지만 같아 보이는 이유이다.

지선이 아이를 찾기 위해 한매의 과거를 쫓아가는 과정은 한매가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이었고, 이 과정에서 밝혀지는 진실들은 한매가 사라지기 전부터 이 세상에 없는 사람과 진배없었다는 것이었다.

한매는 늘 말이 없다. 하지만 침묵은 본인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 아닌 남성가부장적인 사회가 침묵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한매의 남편과 시어머니는 그녀를 가족이 아닌 자궁으로만 존재하게 하였고 그들이 원하는 아들을 낳지 못했을 때 그 집에서 한매는 물건으로만 존재한다. 남편을 선택할 수 없었던 것처럼 임신과 출산 역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으로 시집 온 한매에게 시어머니와 남편은 허락도 없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잘랐고,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는 순간에도 한매는 입을 다물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는 한매의 얼굴은 멍투성이었고, 영화 속에서는 생략되었지만 “싫다”는 목소리를 내었을 때 그 목소리가 폭력으로 돌아온다는 걸,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은 후 한매는 침묵을 배웠으리라.

한매의 목소리가 거부당한 곳은 비단 집만이 아니었다. 한매의 딸 재인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원 관계자가 찾아와 엄마인 한매를 외면한 채 “보호자”를 찾았고, 병원비가 밀린 상황에서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애원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병원은 외면한 채 병실에 한 번도 찾아온 적 없는 남편의 서명을 믿는다.

지선의 삶은 어떠한가? 한매의 진짜 이름은 김연이었고, 김연은 인간이하의 삶을 살며 아이를 위해 ‘목련’이라는 이름으로 성을 팔고, 자신의 장기까지 팔아야 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지선의 삶과 한매의 삶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워킹맘인 지선은 떳떳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직장에서는 민폐 엄마로, 이혼 법정에서는 아이보다 직장일이 더 중요한 독종으로 낙인찍히며 ‘자격 없는 엄마’로 매도된다.

“아이가 실종되었다”는 지선의 진술에도 “아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수를 쓴다”고 우기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진술로 뒤바뀐 채 한매의 목소리를 지우듯 지선의 목소리도 지우며 들어주지 않는다.

한매를 찾아나선 지선이 차 안에서 꾼 꿈은 같으면서도 다른 한매와 지선의 삶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꿈 속에서 지선은 안개에 둘러싸여 있었다. 안개 낀 현실 속에서 남자들은 지선을 손가락질한다. 아이를 찾아 헤매는 지선의 앞에 어둠 속에 놓인 한매가 나타나고 지원은 안개 속에 서 있다. 둘이 서로 다른 공간에 서 있다고 생각할 때쯤 안개가 옅어지기 시작하며 결국 지선이 서 있는 자리 역시 어둠임을 나타낸다. 그저 안개에 가려져 있어 진실을 보지 못했을 뿐 지선과 한매는 같은 어둠 속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잠에서 깬 지선은 어둠 속을 빠져나와 진실을 향해 나아가며 잃어버린 여성의 목소리를 추적해 여성의 몸과 입을 통해 진실을 알린다.

지선에게 한매를 둘러싼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전부 여성이다. 형사들은 사건의 단서를 찾기 위해 지선과 같은 장소를 찾지만 허탕만 치고 돌아오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선은 성매매 여성, 여성 간병인, 결혼 이주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그들이 말하는 방향대로 나아갔을 때 지선은 비로소 한매와 마주하게 된다.

‘사라진 여자’는 비단 한매와 지선만을 뜻하지 않는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삼켜야 했던 무수히 많은 여성들이 모두 ‘사라진 여자’들이다.

<미씽 : 사라진 여자> 속 그녀들에게 진실된 언어가 없었던 게 아니라 그녀들이 말하는 진실을 들어줄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박빛나 영광 여성의 전화 대표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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