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공천을 마무리하고 본선에서 치열하게 경쟁중이다. 전투의 초기 상황들을 여론조사의 결과를 바탕으로 언론에서 앞 다퉈 보도하고 있다.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분석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전략 공천된 후보들의 성적이 예상했던 기대치에 크게 못 미치고 있는 정황이다.

전략공천을 위해 컷 오프된 후 무소속으로 나선 후보가 선전을 하는가 하면 여당에서 버림받고 야당으로 옮긴 후보가 앞서가는 선거구도 적지 않다. 대구와 광주의 상황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취지에 어긋난 전략공천의 후유증이라 볼 수밖에 없다. 여당은 친 박을 심기 위해 전략공천을 그저 허울뿐인 명분으로 사용했다. 야당은 계파 갈등과 연계돼 현역을 무리하게 컷오프하고 그 빈자리를 허겁지겁 채우다보니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후보가 양산됐다.

우리는 이쯤에서 전략공천이라는 제도의 속내를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를 느낄 수밖에 없다. 지난 선거사를 돌이켜볼 때, 전략공천은 야당의 전유물이었다. 조직보다는 특별한 이슈거리를 만들어 선거를 치러야하는 야당의 입장에서 국민들의 시선을 끄는 인물을 후보로 내세우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지금에 비하면 명분도 비교적 뚜렷했다. 지역감정 해소 차원에서 영남 출신을 호남의 지역구에 세운다든지, 혹은 젊은 피 수혈을 앞세워 학생운동권 스타들을 대거 발굴해 전략지역에 투입한다든지 나름의 원칙이 있었다. 물론 돈 공천의 냄새가 자욱한 전략공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지금과 같은 기형적이고도 무원칙한 전략공천은 없었다.

전략공천은 정치신인의 개념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는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정치신인을 투입하는 방편으로 전략공천을 적극 활용했다. 참신한 정치신인을 수혈하겠다는 취지였지만 화려한 스펙 중심으로 해당 지역과 전혀 상관없는 인물들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그저 선거에 처음 나왔다는 게 정치신인이라 불릴만한 유일한 근거일 뿐이다.

지역 유권자들이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인물들을 내세워놓고 표를 달라는 정당의 주문은 솔직히 오만함의 극치다. 모바일을 통해 그들에게서 수많은 러브콜이 와 닿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을 사랑하게 됐다는 억지 춘향의 제스처로만 여겨져 도무지 진정성을 느낄 수가 없다. 법조계에서 고위직을 지냈으니, 정권에서 큰 감투를 쓴 적이 있으니, 일정 분야에서 최고의 수준에 올랐으니 하는 등등 스펙 자랑을 내세우는 것을 보고 있을라치면 역겹기도 하다.

얼마 전 만났던 한 후배의 자조가 새삼 떠오른다. 학생운동 출신인 그는 지방자치 출범 초기에 구의원을 지냈다. 풀뿌리 자치의 중요성이 유행처럼 강조되며 상당수의 젊은 활동가들 사이에서 구의회 진출을 핵심적인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받아들이던 시기였다. 그러한 열정으로 구의원 선거에 나가 당선된 후 열심히 구정활동을 했지만 그는 이제 더 이상의 정치적 도약을 기대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구 의원 출신이라는 성분이 정계에선 마치 하층계급의 표징처럼 그를 옭아맸기 때문이다.

주민 공동체를 위한 그의 그동안의 노력은 우리 정당의 공천 시스템에서 하등의 장점이 될 수 없었다. 미국의 작가 나다니엘 호돈의 ‘큰바위 얼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이 있지만, 한국 정치의 큰 바위 얼굴은 주민 공동체 밖의 먼 외지에서 조각돼 중앙당이 투하한 낙하산처럼 떨어질 뿐이다.

한국 정치의 낙후성이야 천일을 두고 얘기해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산적해있지만 주민 공동체와 함께 오래도록 피땀을 흘린 이들이 정당 정치에서 소외되고 천대받는 풍토만이라도 개선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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