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학교 학생들은 학교의 위상이 높아져서인지 수학여행지에서 음주로 인해 말썽을 피우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10여년 전만해도 호실에 숨어 몰래 술을 먹고 이불과 방바닥 이곳저곳에 토해놓거나, 숙소를 요령껏 빠져나가 어디서 술에 잔뜩 취해 돌아오다가 골목의 전신주를 틀어잡고 우는 녀석도 있었다. 이러다보니 교사들은 밤만 되면 호실 단속과 출입문 봉쇄를 위해 밤새 순번을 정해 불침번을 서는 것이 일이었다.

경주 불국사 앞에 위치한 숙박단지의 숙소에서 벌어진 일이다. 저녁식사를 마친 학생들에게 호실에서 간단한 오락이나 잡담으로 시간을 보내도록 하고, 교사들은 현관에 모여 출입문을 지키면서 한참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바로 옆 숙소 주인아저씨가 우리 학생 2명을 붙잡아 데려와 뭐라 하면서 잔뜩 화가 나 변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자초지종을 들어보고 현장을 살펴보니 정말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2층 호실에 배정된 녀석들은 술이 필요했는지 2명이 대표로 숙소를 몰래 빠져나가 술을 사오기로 하였단다. 1층 출입구는 봉쇄된 상태라 빠져나갈 방법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살펴보다가 2층 화장실 외벽에 설치된, 옥상의 빗물을 지상으로 흘려보내기 위한 홈통을 타고 내려가기로 한 것이다. 홈통 바로 아래는 옆집과의 담장이 있어 조금만 내려가면 되었고, 담장 위 비좁은 공간을 지나면 옆집 뒤뜰로 나갈 수가 있었다. 담장 끝 부분에는 슬레이트 지붕이 비스듬히 놓여 있어 거기를 조심히 밟고 뒤뜰로 내려간 다음 시내로 빠져나갈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슬레이트 지붕이었다. 슬레이트 지붕 아래는 옆집의 집단투숙객에게 제공하기 위한 국을 끓이는 대형 솥이 설치되어 있었고, 늘 불을 지피다보니 슬레이트 지붕이 버근버근하였던 것이다. 이를 모르는 두 녀석이 지붕 위에 올라선 순간 지붕은 중량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고, 솥에는 다음날 투숙객에게 제공하기 위해 가스토치를 이용해 국을 끓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녀석들이 떨어진 곳은 그 솥 바로 옆 바닥이었고 다친 데는 전혀 없었다. 아찔했다.

아저씨에게 정말 죄송하게 되었다며 사죄하고 지붕 수선과 버려버린 국을 다시 장만할 비용을 협의하여 변상하였다. 변상 비용이 만만치 않았지만 그래도 녀석들이 솥 안으로 떨어지지 않은 것을 정말 다행으로 생각하고 기꺼이 변상해 주었다. 그리고 녀석들은 물론 같이 모의한 녀석들까지 모두 색출하여 밤 12시가 넘는 시간까지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도록 혼을 내었다. 그리고 두 녀석의 부모에게는 이 사실을 전화연락하면서 안심을 시켰다.

학창시절 수학여행을 하게 되면 누구나 잠시 일탈행위를 하거나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술은 정말 조심하여야 한다. 학생들의 경우 처음 술을 접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어른들과는 달리 자기의 주량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소주 한 잔을 마시고 숨을 쉬기가 어려울 정도로 곤란을 겪는 사람을 직접 보았다. 이런 사람을 부모로 둔 자녀라면 호기심이나 군중심리로 술을 몇 잔 마시게 되었을 때 치명적인 일이 벌어질 수도 있기에 정말 주의할 일인 것이다.

박석원 해룡중학교 교감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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