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어디 갔다 인자 왔어? 나는 성이 나를 잊어버린 줄 알았당게, 인자 나 혼자 놔두고 가지 마랑게 잉~”

내 얼굴을 보자마자 다가와서 내 두 손을 꽉 붙잡고 함박웃음을 날리는 갈뫼댁 순임할매,

단짝인 복순할매는 오늘도 부럽다는 듯 우리 둘을 빤히 바라보면서도 가까이 오지 않는다.

나는 얼른, “오메, 동생! 미얀혀어, 내가 한 달 만에 왔제이~그래도 안잊어불고 왔응게 용서해주쇼 잉!” 하며 아기새 품듯, 마르고 야윈 몸을 안아주며 토닥이면 아이처럼 배시시 웃다가 껌딱지 복순할매를 쳐다보곤 내게 눈을 맞춘다.

나는 그게 무슨 신호인지 안다.

얼른, 부러운 듯 우리를 쳐다보는 복순할매에게 다가가 꼬옥 안아주며 그동안 내동생이랑 잘 지냈느냐고, 함께 놀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네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짓는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2015년부터 노인장기요양기관 입소어르신들의 존엄성 보장을 위해 지역민의 일원으로서 시설을 모니터링하며, 개선방안 논의, 인권침해 유발 요인 시정 권고 등을 통하여 입소 어르신들이 건강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을 하는 나는 ‘노인 인권지킴이’이다.

한 달에 한번, 노인요양시설을 둘러보면서 어르신들이 잘 지내고 계시는지, 혹여 당연히 누려야 할 인간 존엄의 권리를 침해받고 있지는 않은지 세심하게 살피고, 시설 종사자들의 인권 모니터링도 한다.

처음 활동을 시작 했을 때에는 주로 시설 설비 측면에서의 취약 부분과,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의 인권 침해 부분을 살폈지만, 어느 정도 시설의 방문 횟수가 많아지면서부터는 입소 어르신들의 애로청취와 그 분들을 보살피는 요양보호사들의 고충을 들어드리고 좀 더 나은 방법들을 알아보는 방향으로 활동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노인요양시설의 환경이나 설비 등, 외적인 면은 많이 좋아지고 있지만, 입소 어르신에 대한 정서적인 돌봄 부분에서는 아직은 흡족해 보이지 않는다.

처음 노인요양시설에 들어서면 입소 어르신 대부분은 낯선 이의 방문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그냥 멀거니 쳐다만 보는 것이 다반사다.

그런데 갈뫼댁 순임할매는 당신 스스로 내게 다가와 손을 잡아주며 반갑다는 듯 말을 걸어주셨다.

“왜인지 성이라고 부르고 잡은디이~ 그래도 된가 잉? 서엉”

순간, 놀랐지만 금방 아무렇지 않은 척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럼요! 되고 말고요~ 근디 동상은 몇 살인겨, 이름은?”

“잉, 성! 나는 열일곱이고요, 이름은 울 아부지가 순하게 살라고 순임이라고 지어줬당게요, 내 여동생 이름은 순덕이여~”

하면서 친정은 어디고 여기서 지내고 있으면 딸이 데리러 온다고 해서 임시로 있는 것이라는 등 구구절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으셨다.

함께 맞장구도 치며 이야기를 듣는데 다른 할머니 한 분이 미소를 지으며 옆에 서 계셔서 순임할매께 소개를 부탁드렸다.

그 분 이름은 복순이고, 두 분은 같은 방에서 거처하는데, 항상 둘이 붙어 다니고 무엇이든지 함께한다고 했다.

거의 다 좋은데 화장실도 따라 들어오려고 해서 신경이 쓰이지만 그래도 좋은 것이 많고 둘이 함께여서 든든하다고 하셨다. 그날 복순할매가 내게 정말 갈뫼댁의 언니인지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두 분과의 만남은 그곳 시설을 방문할 때마다 내게 묘한 설레임을 가지게 했다.

한 달 만의 만남인데 그동안 잘 지내고 계시는지, 가족들은 한 번이라도 얼굴을 보여줬는지...

온갖 생각을 품고 가서 얼굴을 뵈면 조금씩 다른 반응이 왔다.

뇌의 기억장치가 많이 헝클어졌을 땐 ‘낯이 많이 익는디 혹시 자신의 성이 아닌가’ 묻기도 했고, 상태가 조금 좋아졌을 때엔 ‘성이 너무 보고 싶어서 힘들었다’ 며 눈가에 촉촉한 이슬이 맺히기도 했다.

두 분 모두 뇌가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진 못하지만 다행이 움직이는 것엔 문제가 없어서 함께 시설에서 준비한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걷기운동도 같이하며 한 쌍의 비둘기마냥 서로 의지하고 지내신다. 그 모습이 좋아보여서 다른 어르신들께도 짝지를 만드시라고 적극 권하는데 서로간의 끌림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시설마다 단짝이 있는 분들의 얼굴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이는 것은 비록 완전하진 않지만, 의지할 그 누군가가 있다는 안도감 덕분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노인요양시설에는 삶의 끝자락에, 그동안 살아왔던 자신의 집이 아닌 곳에 와 있다는 사실을 못 견뎌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살아야만 한다는 현실에 힘들어하며 얼른 저세상으로 가고 싶다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분들이 얼마나 외로워하는지...

차라리 치매라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다행이련만 자신은 정신이 너무 총총해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감사하다고 하시던 어르신들...

그리고, 치매어르신들도 지극한 관심과 사랑으로 함께 하면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현장에서 체득하는 중이다. 늘 무표정이던 치매어르신이 자신의 간식을 내게 나눠주시고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주시는 것이 아마도 그 증거이리라.

어르신들께 주어진 삶의 시간들이 얼마나 남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기에, 나의 임무는 어르신들께서 살아계시는 동안,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가 침해받지 않도록 매의 눈으로 세심하게 살피고, 어르신 한분 한분의 눈을 바라보며 미소 지으며 두 손 꼬옥 잡아드리는 것, 한순간이나마 어르신들께 웃음을 줄 수 있도록 따스한 에너지를 많이 전해드리는 것이 최선임을 믿는다.

♣ 헌법 제 10조 :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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