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고등학생들의 수학여행은 대부분 3박4일에 설악산과 경주를 잇는 코스로 이루어졌다. 설악산으로 먼저 향할 경우에는 설악산에서 1박을 한 후 경주에서 2박을 하게 되고, 경주로 먼저 향할 경우에는 경주에서 1박, 설악산에서 2박을 하게 된다. 설악산은 주로 외설악에 머물면서 주로 신흥사, 계조암, 흔들바위, 울산바위, 비룡폭포, 비선대, 와선대, 통일전망대 등을 관광하고, 경주에서는 불국사 앞에 위치한 숙소단지에 머물면서 불국사, 보문단지, 석굴암, 첨성대, 천마총, 국립경주박물관 등을 구경하게 된다.

처음 일학년 주임을 맡아 높은 사명감과 치밀한 기획력으로 수학여행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번 수학여행에는 15명 정도의 선생님이 학생들을 인솔하게 되었으며, 총책임자인 교장선생님을 비롯하여 10개 학급 담임교사와 학생부장 교사, 비담임교사, 행정실 직원 등에게 합당한 업무를 배정하였다. 먼저 설악산을 거쳐 경주로 향하는 코스를 선택하고 관광버스 10대를 이용하여 여행길에 올랐다.

주임인 내가 학생부장과 함께 1호차에 탑승하여 전체를 지휘하고 교장선생님과 비담임교사 및 행정실 직원 등을 알맞은 차량에 적절하게 연결시켰다. 수학여행에서 항상 주의할 것은 학생들의 인원 점검과 생활지도, 차량 안전 등이다. 정확한 인원 점검을 위해 젊은 후배교사에게 원칙 및 요령을 전달하여 맡기고, 생활지도는 학생부장이 지도계획과 점검을 담당하게 했으며, 차량 안전은 같이 동행하는 여행사 사장님과 늘 협의하면서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침 일찍 출발하였지만 설악산은 멀기만 하다. 장거리 차량 이동으로 교사와 학생들이 모두 지쳐갈 즈음, 한계령을 넘기 1시간 전쯤이었을 것이다. 큰 고개를 넘기 전에 간이화장실을 이용하게 하였다. 화장실은 하천과 나란하게 달리는 도로 한편에 위치하였고, 단체가 이용하기에는 턱없이 비좁았다. 용변을 모두 마치고 다시 차량에 탑승한 후 학생들의 인원 점검이 끝나자 “이제 한계령에서 한번 쉬고 곧장 숙소로 달립시다.”하고 사장님과 정리한 후 곧장 출발하였다. 한 30분쯤 달렸을까. 뒤의 차량 한 대가 비상라이트를 깜박이면서 1호차에 다가왔다. 뭔가 잘못됐음이 분명하다. 알아본즉 학생들은 모두 탑승했는데 교장선생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득했다. 학생부장에게 1호차를 맡기고 차량 1대의 학생들을 다른 차량에 분산 탑승시켰다. 차량 9대는 계속 한계령을 향해 진행하게 하고 1대는 사장님과 함께 마지막으로 정차했던 간이화장실을 향해 급히 되돌아 달렸다. 교장선생님은 화장실 앞에 우두커니 서 계셨다.

이후 교장선생님은 이 점에 대하여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요즘처럼 너나없이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는 세상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박석원 해룡중학교 교감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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