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임 영광여성의전화 활동가

이른 아침 부푼 마음으로 향화도에서 출발하여 낙월도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오늘은 제 18회 농촌여성 문화축제가 열리는 날이다.

신입활동가인 나에게는 처음 맞는 축제이지만 1999년부터 시작한 농촌여성문화축제는 올해로 18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동안 영광군에 소재한 11개 읍·면에서 축제를 했고 올해는 낙월도에서 열린다. 낙월도에 도착하니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의 섬마을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렇게 작은 섬마을에서 행사를 치룰 수 있을까...과연 몇 분의 마을분들이 모이실까...걱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축제라는 생각에 마음이 들떠 있었다. 

11월 2일~3일 이틀간 진행된 축제는 전야제로 문화생활을 쉽게 접하지 못하셨을 어르신들을 위해 작은 영화제를 열었다. 25분정도의 어르신들이 행사장에 모이셨고 영화가 상영되었다. 젊어서 6.25전쟁을 경험하고 생계를 위해 독일이라는 낯선 나라에 남편이 광부로 떠나지만 그곳에서 남편을 잃고 오직 아들만을 바라보고 살았던, 자신의 삶에 아들만이 유일한 자랑거리였던 칠순 할머니가 우연히 20대 꽃처녀로 돌아가 잃어버린 자신의 젊은 시절을 누리다 결국은 다시 칠순 할머니의 본 모습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그린 ‘수상한 그녀’라는 영화를 보는 동안 동네 어르신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장면 장면에 박장대소가 터트리기도 하고. 훌쩍훌쩍 눈물을 훔치기도 하셨다. 아마도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은 주인공과 같이 자신을 위한 삶은 뒷전으로 하고 가족을 위해 견뎌야 했던 지난날의 힘든 시절을 떠올리며 웃기도 울기도 하셨으리라...영화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시던 한 어르신이 내 손을 꼬옥 잡으시며 “참말로 좋소야, 참말로 고맙소..”라는 말씀을 하시며 눈물을 훔치시는 모습에 나 또한 눈시울이 붉어지며...아..이렇게 좋아하시는데 오길 정말 잘했구나... 몇 명이나 모일까 생각했던 근심은 사라지고 내 마음속에선 한분, 한분을 위해서 우리가 준비한 모든 것을 다 보여드리고 잊지 못하실 추억을 함께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제18회 농촌여성 문화축제 전야제-낙월 작은영화제 ‘수상한 그녀’상영 중

“아.아. 면사무소에서 알려드립니다.  오늘은 영광여성의 전화에서 준비한 농촌여성문화축제가 열리는 날입니다. 주민들께서는 면사무소 2층으로 오셔서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른 아침부터 낙월면을 흔들어 깨우는 방송이 들려 온다. 드디어 이튿날이 밝았다.  어제 영화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이다. 면사무소 입구에는 만국기가 걸려있고 여성의 전화 활동가들도, 마을 이장님도 한껏 들뜬 분위기 이다. 오늘은 작은 운동회와 문화 나눔 행사가 열리는 날이다. 낙월면사무소 부면장님과 마을 이장님, 부녀회장님께서 어르신들을 모셔 오시는 모습을 보니 기획은 우리가 했지만 결국은 한마음으로 축제에 동참하시며 동네잔치로 여겨주시는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어 마음이 찡했다.

행사장에 등장 하시는 우리 어르신들의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배타고 읍에 나가실 때나 입으실 법한 색색의 옷으로 치장을 하고 나오시는 모습이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목청껏 자신이 속한 팀을 응원하시는 어르신들. “오메, 오메 어찌까잉, 안들어가 불고 다 나가 버리네잉..”바구니에 공 넣기를 하는 자신의 팀의 실수를 안타까워 하시는 어르신.

“내가 소싯적에는 달음박질도 잘했는디...인자는 지팡이 없이는 걷도 못항게 박수라도 열심히 쳐야제”라고 말씀 하시는 어르신.

게임이 끝 날 때마다 승리를 만끽 하시며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시는 어르신. 마을 주민 모두가 각자 할 수 있는 선에서 함께 축제를 즐기고 계시는 모습에 가슴 속에서 뭉클함이 올라 왔다.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어제와 오늘 청춘의 시절로 돌아 간 듯 흥을 즐기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에 그간의 노고가 다 사라 지는 듯 했다. 어쩌면 우리의 작은 정성에 어르신들이 힘든 몸을 이끌고 최선을 다해 참여해주시는 더 큰 정성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덕이지 않을까... 축제를 마치고 낙월도를 떠나는 마지막배에 몸을 실었다. 섬까지 와서 이렇게 좋은 잔치를 열어줘서 너무 고맙다고 연신 말씀 하시던 어르신, 내년에 꼭 다시 오라고 손을 잡아주시던 어르신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멀어지는 낙월도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본다. 배안을 둘러보니 이번 축제를 위해 애써준 여성의전화 활동가들, 회원들, 그리고 축제의 취지만 듣고 함께 동참해주신 문화 공연팀들의 모습이 보인다.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축제를 위해 선뜻 시간을 내어 함께 해주신 분들이 있었기에 더욱 값진 축제 였으리라...

‘아~그래 이렇게 사는 거지...이것이 바로 공동체인거지~’

무엇인가 큰 일을 해낸 듯 뿌듯한 마음으로 배 한켠에 몸을 뉘이며 이틀간의 여정을 떠올려 본다. 그동안 농업의 일터와 가사일 등의 값진 노동을 해내면서도 한순간도 자신을 위한 쉼을 얻지 못하셨을 우리 어머니들... 지난 날 자신의 젊음을 다 바쳐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며 가족을 위해 헌신 하며 살아오셨을 우리 어머니들... 각자 살아 온 삶의 모습이 다르고, 삶의 애환이 다를 테지만 이 축제를 통해 한평생 땅에 묻혀 묵묵히 일만 해온 자신이 지역사회 안에서도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인식하고 자존감을 회복하여 앞으로의 여생만큼은 여성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 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제18회 농촌여성 문화축제 작은운동회 –입으로 탁구공 넘기기를 하시는 낙월 최고령 어르신

박정임 영광여성의전화 활동가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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