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주영 영광군정신건강복지센터 과장

지난 10월 서울의 한 PC방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가해자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절차에 따라 정신감정을 받았습니다. 감정 결과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나 사물변별능력과 의사결정능력에 아무런 장애가 없다는 판정이 나왔습니다. 감정 결과가 발표된 직후, 검찰청 앞에 취재 기자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기자들이 살해 동기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합니다.

“테이블을 치워달라는 요구가 잘못이 아닌데, 왜 시비냐고 따져 억울하고 화가 났다. 너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피해자의 말에 과거의 생각들이 떠오르면서,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비참한 생각이 들었다.”

기자들 앞에 선 그는 숨도 고르지 못할 만큼 매우 불안해보였고, 후회하는 듯 했습니다. 길에서 마주쳤다면 무심코 스쳐갈 만큼 평범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그를 일순간에 잔인한 악마로 만든 건 빗나간 분노였습니다.

정당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화가 났고, 오히려 자신을 시비 거는 사람으로 모함하여 억울했으며, 자신을 아무 것도 아니라며 무시했기에, 그간의 모든 서러움이 폭발하였다는 것입니다. ‘부당하다’ 혹은 ‘무시당했다’와 같은 판단은 모든 사람을 억울하고, 서럽고, 화나게 합니다. 하지만 대체로는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분노를 해소하려 합니다. 가해자는 자신의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고, 자신이 분노한 이유처럼 ‘부당한’ 방법으로 벌을 주고, 인격과 권리를 ‘무시’했습니다. 감정과 행동의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한 것입니다.

분노는 이처럼 휘발성이 강한 감정입니다. 찬찬히 따져볼 틈을 주지 않고 순식간에 등장하여 이성을 마비시킵니다. 분노가 생겨나면, 티끌만한 자극에도 곧장 거친 행동으로 폭발할 수 있습니다. 폭발을 막는 가장 중요한 시기는 분노의 감정이 막 피어오르기 시작할 때이며, 이 때 상대의 말과 행동을 재해석해야 합니다. 혹 자신과 무관한 상대방의 언행을 ‘나를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오해하지 않았는지, 자신만의 잣대로 ‘부당하다’, ‘바로잡아야한다’라고 여기지 않았는지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재점검하는 것을 심리학 용어로 인지적 재평가(cognitive reappraisal)라고 합니다. 선인들의 조언대로 참을 인(忍)자 세 번을 새기며, 자신의 생각을 재점검한다면 더러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며 슬그머니 화가 수그러들지 모릅니다.

분노는 또한 전염성이 강한 감정입니다. 누군가 화를 내면, 단지 그 행동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동시에 불쾌한 기분이 듭니다. 싸움을 말리려다 또 다른 싸움에 말려드는 어이없는 상황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무심코 표출한 나의 분노는 마치 7중 추돌사고처럼 일면식도 없는 타인의 행복까지 좀먹을 수 있습니다. 특히, 가정에서 부모의 분노가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분노를 깨달음에 방해가 되는 삼독(三毒) 중 하나로 지목했고, 기독교에서는 분노로 저지른 잘못을 칠죄(七罪)의 하나로 여겼습니다. 득도(得道)하거나 천국에 닿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분노를 다스려야 합니다. 분노가 진정한 해결이나 지속적인 만족감을 불러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분노는 신체적 긴장을 불러올 뿐이며, 만성적 긴장은 내 몸을 병들게 합니다. 분노란 결국 칼자루가 아닌 칼날을 쥐는 것과 같아서, 상대를 괴롭히는 것보다 몇배 더 자신을 불행하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남주영 영광군정신건강복지센터 과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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