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9.6.15 토 20:16
상단여백
HOME 여론광장 칼럼
[김종남의 인재육성 칼럼] ‘싱어롱’도 새로운 한류가 되는 게 아닐까
김종남 前 광주일보 편집국장 (언론인) | 승인 2018.12.26 17:44 |
김종남 前 광주일보 편집국장

“위아더 챔피언, 위아더 챔피언, 노타임 포 루저스---” 영화화면에 빨려들 듯 모두 일어서서 노래 부른다. 그것도 영어가사를--. 모르는 사람도 서로 어깨동무하고 눈물을 흘린다. 세계가 놀라는 대한민국 ‘떼창문화’가 이제 ‘싱어롱(노래부르기 모임)문화’도 만들어냈다. 음악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이다. 어느 평론가는 이 열풍이 “한국에 2002년 월드컵 이후 처음인 ‘화합의 장’을 가져왔다”고 말한다.

음악영화를 좋아해서 개봉하자마자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았다. 너무나 귀에 익숙한 ‘위아더 챔피언’이 록 밴드 퀸이 만든 노래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엔 인기를 끌지 못했다. 점점 인기가 오르더니 관객 수가 8백50만을 넘어섰다. 우리나라 상영 음악영화중 최고 관객 수이자 퀸의 본거지 영국보다 더 많은 관객 수란다.

8년 전 이창동 감독 영화 <시>를 본 기억이 난다. 개봉한 지 4일째였다. 너른 극장 안에 관객은 4명뿐이었다. 관객이 많지 않아 일찍 종영되었다. 유서 같은 시 한 편을 쓰고 자살한 주인공 양미자(66)할머니 이야기를 잔잔한 감동으로 풀어낸 영화, <시>는 칸 영화제 각본상등 국제적인 상은 많이 받았으나 국내 흥행에는 실패했다. 총 관객 수가 22만여 명에 그쳤다.

누적관객수로 영화를 평가할 수는 없다. 수상경력이 작품 감동을 재는 기준이 될 수도 없다. 그러나 관객 수 많은 영화가 그만큼 많은 사람을 움직일 힘(감동)을 가졌다는 사실은 인정해야한다. 감동전달이 빠른 음악에 영상까지 붙은 음악영화는 대개 관객 수가 많다. 그런데 <보헤미안 랩소디>는 여러 번 보는 사람이 유난히 많다. 싱어롱 상영관까지 몰려가 떼창을 하는 열정 관객이 생겨난 때문이다.

‘여러 번 보고 싱어롱까지 가는 이유’를 그들은 ‘위로’라고 말한다. 위아더 챔피언을 따라 부르며 감동하고 위로를 받는다. 에이즈로 죽어가면서도 그 고통과 공포를 노래로 승화시킨 프레디 머큐리(1946.9/5~1991.11/24) 실제 스토리가 감동의 원천이다. 아무리 잘 만든 이야기(허구)도 실제 스토리(실화)를 당할 수 없다. 실화는 역사와 우리 삶속에 살아있다.

2년 전 이준익 감독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시인, 해방 몇 달 전 일본감옥에서 요절한 윤동주(1917.12/30~1945.2/16) 실화를 바탕으로 <동주>를 만들었다. 흑백영화인데도 117만 명이 관람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지금도 우리는 괴로운 날, 윤동주의 ‘서시’를 암송하며 위로를 받는다.

“----- But it`s been no bed of roses / No pleasure cruise / I consider it a challenge before the whole human race / And I ain`t gonna lose / And I need just go on and go on, and on, and on, and on ---- ( 하지만 언제나 장미꽃밭은 아닐테지 / 언제나 순풍에 순항하지는 못할 거야 / 이건 모든 사람 앞에 놓인 도전이라는 것을 알아 / 난 결코 지지 않을 거야 / 난 계속해서 계속, 계속 가야만 해…” 노래도 글로 읽으면 시가 된다. ‘계속해서, 계속 걷는 길에 패배자를 위한 시간이 있을 수 없다. 모두가 챔피언이다.’ 죽음의 고통을 안고 살았던 프레디 머큐리가 주는 위로의 시구다.

노래는 시구보다 감동전달이 빠르다. 떼로 부르는 떼창은 감동을 더욱 증폭시킨다. 함께하는 목청이 ‘화합의 장’을 이룬다. 우리가 영어로 위아더 챔피언을 떼창하듯. 방탄소년단 외국인 팬들은 한국말로 BTS노래를 떼창한다. 이러다 싱어롱도 새로운 한류가 되는 게 아닐까.

▶언론인 김종남은...

광주서석초등학교, 광주서중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1967년 ROTC 장교로 임관, 강원도 양구에서 2년 반 병역을 마치고 1971년 전남일보(광주일보 전신)에 입사, 30년 동안 기자생활을 했다. 1982년 미국미주리대학 저널리즘스쿨에서 1년간 언론학을 연수했다. 1997년 광주대학교 언론대학원을 졸업하고 16년간 광주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로 언론과 지역사회, 언론사상사, 언론문장론을 강의했다. 2001년 광주일보를 나와 4년 동안 광주비엔날레 사무총장을 지낸 후 (사)무등사랑 청년취업아카데미와 인생나눔교실 등에서 글쓰기 특강과 멘토링을 하고 있다.

김종남 前 광주일보 편집국장 (언론인)  news@ygweekly.com

<저작권자 © 영광군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영광군민신문 소개광고안내구독신청기사제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영광미디어 영광군 영광읍 중앙로 19  |  대표전화 : 061-352-0120  |  팩스 : 061-351-9401
등록번호 : 전남, 다00359   |  등록일 : 2015.11.23   |  발행인 : 조민상  |  편집인 : 조일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조일근
Copyright © 2019 영광군민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