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5월이다.

해마다 오는 시기의 고유명사를 새삼 새기는 일이야 덧없는 짓이겠지만, 언제부턴가 이 땅의 5월은 기억해야 할 달이 됐다. 우리 모두에게 엄중한 역사의 무게로 다가서는 까닭이다.

80년 5·18, 아니 그해의 5월. 광주인들에게, 전라도인들에게, 그 몇 날의 체험은 잊지 못할 삶의 경계였다. 비단 죽음과 삶을 갈라놓는 순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이들에게도 국가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 고통스런 성찰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어떤 이는 성직자의 길로 나섰고, 또 어떤 이는 시인의 숙명을 떠안게 되었고, 어떤 이는 더욱 단호하게 투사의 삶을 실천하며 고문이 난무하는 형벌의 방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도 그해 5월은 6월의 달력이 찢겨져 나가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끝나지 않았다. 죽음의 행진이 간헐적으로 이어졌고, 학살의 원죄를 지닌 권력도 더더욱 강고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쟁의 시간들 또한 끝없이 이어졌다. 폭압이 있었기에 간단치 않았던 이 고통스런 여정이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지칠 줄 모르는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다름 아닌, 바로 그 해 5월의 체험과 그 기억이 자신의 삶마저 태워버리는 맹렬한 불길의 화인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광주는 한국 민주주의의 활화산이라는 고유명사를 획득하게 됐으며, 정치변혁의 본산이 됐다.

군부독재의 후예들로부터 정권을 앗아 온 이후 광주의 5월 정신은 벼르던 칼을 버리고 시민사회의 고결한 기치가 됐다. 민주, 인권, 평화 등등. 누구의 의지였는지는 모르지만 전국화와 보편화, 그리고 세계화로의 등 떠밀음에 실려 갔다. 투명한 의지가 혼미해졌기에 갖은 미혹이 참섭하였다. 현실정치의 도구가 되었고, 자본의 광대가 되기도 했다. 급기야는 변하지 않는 5월정신은 풍족한 세상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손가락질 받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2016년 5월이다.

박근혜 정권은 5월 열사들을 위한 우리들의 레퀴엠인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허했다. 보훈처장이라는 자의 입으로 불허된 그 언급 속에는 불허의 까닭조차 명료하게 설명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그저 싫은 것이다. 그들 스스로가 광주가 들고 일어선 전복의 대상이었다는 오랜 기억이 아직도 그들의 핏속에서 작동되고 있는 셈이다.

전두환의 발포명령 부인이 다시 시사의 포커스로 떠올라있기도 하다. 맹랑하고 허망하다. 광주의 5월이 100리쯤 와있다고 생각했는데 10리도 오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밀려든다. 야당이 발끈하고 있지만, 이들의 대응을 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입만 열면 광주의 5월을 그들 정치의 모태신앙처럼 들먹이던 자들이 이제껏 그 가치의 정립을 위해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음이 드러난 사태인 까닭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권의 이 도발은 의도적인 것인지 모른다. ‘닥치고 경제’ 로 나아간다는 야권의 발목을 잡고 다시 이념논쟁을 통해 다시 호남 고립과 보수우파를 결집하려는 간교한 전략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정의할 수밖에 없다. 광주의 5월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누군가는 5월의 달력을 찢고 싶겠지만.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아 변색된 5월의 달력을 우리들 존재의 방 한구석에 여전히 걸어두겠다고.

영광군민신문  news@ygweekly.com

<저작권자 © 영광군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