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운동 36주년입니다. 매년 이맘때면 그때의 광주가 머릿속에 펼쳐집니다. 연일 당시 총리이던 신현확과 전두환 물러나라는 시위가 계속됐지요. 대학마다 경쟁하듯 시위를 했습니다. 지금은 아시아 문화전당이 된 전남도청 앞 분수대가 그 중심이었지요. 시민들의 응원 속에 피끓는 젊은이들의 사자후가 금남로를 덮었습니다.

16일 밤. 전남대학교에서 시작한 야간 시위는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질서정연하게 도청 앞 분수대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제약 받지 않은 시위는 없었습니다. 흥분을 금치 못하며 현장을 취재했지요. 민주화에 대한 기대가 부른 흥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날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17일 자정을 기해 신군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민주화 인사들을 검거했습니다. 그렇게 이상할 정도로 한가하고 조용했던 하루는 폭풍전야 이었던 것입니다. 섣부른 기대는 무너지고 암울한 세월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철권통치가 예감되는 긴박한 상황이 전개됐습니다. 밤새 계엄군이 전남대와 조선대를 접수(?)해버린 것입니다. 18일 새벽. 무장한 병사들. 운동장의 대형 군용 텐트들. 장갑차. 운동장을 훔쳐보는 순간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비극의 예고편을 본 것입니다.

학생 지도자들 체포와 휴교령. 민주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됐습니다. 등교하려는 대학생들과 계엄군이 충돌하면서 투석정이 벌어지면서 시위는 격화됐지요. 착검한 총과 몽둥이를 들고 쫓는 계엄군. 맞서는 학생과 시민들. 희생자가 늘어갔습니다. 광주민중항쟁은 이렇게 시작됐지요. 19일부터 시위대의 규모는 엄청나게 커져 20일엔 20만 명에 달하는 시위대가 시청을 장악하고 시외전화가 두절되면서 광주가 고립됐습니다. 20일 밤 계엄군의 발포가 시작됐지요.

21일 낮 1시경 도청에서 적십자 병원 가는 길 초입에 있는 식당에서 눈에 들어간 최루가스를 씻어내고 다리쉼을 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전쟁터에서나 울려야 할 요란한 총성이 울렸습니다. 그리고 정적이 감돌았습니다. 무작정 뛰쳐나갔지요. 문을 나서는 찰라 총성이 울리고 눈앞으로 총알이 날아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총각귀신 될 뻔 했습니다. 앉아쏴 자세를 한 군인들이 도청 앞 분수대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헬기가 뭐라고 떠들고 사람들이 다니는 소리가 나서야 거리로 나섰습니다. 도청에서 멀어지는 사람들에게는 발포를 하지 않았지요. 남광주 역에서 조선대 쪽 철로에서 제 키보다 조금 짧은 소총을 끌며 가는 런닝셔츠 차림의 중학생이 저를 슬프게 했습니다. 광주여고 옆 골목에서 길을 건너기 위해 뛰어가는 고등학생이 분수대의 군인이 쏜 총탄에 허벅지를 맞고 아스팔트 위로 뒹굴었습니다. 가서 끌어내야 된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총탄이 무서워 못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그 잔인한 기억이 괴롭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인정하는 정권이 들어서면 이처럼 고통스러운 5월을 맞지 않아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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