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비극은 많은 생명을 앗아갔다는 사실 이상의 끔찍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선다. 지식정보 사회의 취약함, 그리고 기술과학의 오류가 낳은 비극은 상상이상의 참혹한 결과를 낳는다는 섬뜩한 자각을 안겨줬다.

소비대중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도, 전문가 집단도, 그 누구도 살균제의 위험성에 무지했고 경각심도 느끼지 못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병원이라는 일터에서 발생한 잇따른 죽음에 괴로워했던 한 의사의 집요함이 아니었다면 살균제 피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을지 모른다.

과학기술과 생명주의, 혹은 인문정신이 공존하는 세상은 그렇듯 쉽지가 않다. 그리고 과학기술이 기술의 진화에만 집착하여 함몰되고, 학문이 인간 삶의 가치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아버린 그 뒤란에서 참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생명에 대한 경외가 없는 맹목적 상업주의가 또한 그 비극을 확장하게 마련이다. 사람을 죽인 그 살균제는 광고 문구 속에서 사람을 살리는 이로운 물질로 포장됐을 게 빤하니까.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해 판매한 기업주의 11살 먹은 어린 딸 또한 그 살균제 독성으로 사망했다는 뉴스는 마치 한편의 호러 시네마를 보는듯한 공포와 전율을 느끼게 한다. 기술과학이 내뱉는 지식정보를 부단히 의심하고, 제도적 점검 수단을 강화하는 길만이 유일한 해법일 것이다.

대한민국은 최근 몇 년 동안 전근대적 생명경시의 체험을 했다.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노동자들의 잇단 죽음, 그리고 살균제 파동에 이르기까지 생명존엄의 가치가 자본과 경제의 확장 논리에 철저하게 짓밟힌 야만을 눈앞에서 확인했다. 그때마다 정권은 구조적 병폐를 찾아보지도 않고 망각을 강요했을 뿐이다.

상시 청문회가 국회를 통과했다. 법대로라면 최근 국민들을 분노케 헸던 모든 사안들이 청문의 도마위에 올라올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공포를 거부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전해진다. 나쁜 짓 한 자들을 불러 세우자는데 웬 트집인가 싶다. 혹여 자신이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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