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상시 청문회를 의결한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나섰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이렇게 되면 박 대통령이 약속한 협치가 물 건너갔음은 물론이요 20대 국회의 앞날에도 먹구름이 꼈다.

걱정이 깊어진다. 20대 국회는 할 일이 많은 국회다. 우선 경제위기가 심각하다. 2013년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한국의 평균 경제 성장률은 2.93%로 추락했다. 경제학자들이 마지노선으로 여기는 3.0% 둑이 무너진 것이다. 이는 우리가 경제에 실패한 정권으로 여기고 있는 YS정권 경제성장률의 반 토막 수준이다.

이 와중에 쓰나미 하나가 또 밀려들고 있다. 조선· 해운업의 대 붕락이 예고돼 있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산업재편이라는 구조조정 없이는 위기를 극복하기가 힘들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산업재편은 고용시장에 큰 변화를 몰고 오기에 사회적 대합의가 필요하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핵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파행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국회가 그 책무를 제대로 수행할리 만무하다. 경제위기에 정국 혼란까지 겹쳤을 때 빚어질 국난 사태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런 결과가 빤한데도 박 대통령은 왜 국회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을 거부하는 것일까.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기에 박 대통령을 제외한 그 누구도 답을 내놓을 수 없다.

국회법 개정안의 골자인 상시청문회는 미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운영하고 있는 제도다. 더더구나 우리나라의 정책결정 투명성은 세계경제포럼(WEF) 조사에 따르면 140개 가입국 중 123위로 매우 저조하다.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을 더 투명하게 만들 조치가 시급하다는 얘기다. 상시 청문회는 그 같은 문제를 해소할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다.

국정마비가 올 수 있다는 게 거부권 행사의 명분이지만 최근 일들만 보아도 우리나라는 집행부의 밀실행정이 오히려 문제가 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청와대도 아닌 해경이라는 작은 권력도 얼마 전 세월호 특별위원회의 자료제출 요구를 거부했다. 청문회와 같은 헌법기구가 아니고서는 해경의 거부행위를 제어할 수단이 없다.

50여 년 동안 백악관을 출입한 전설적인 여기자 헬렌 토마스는 ‘권력자에게 질문없는 사회는 민주사회가 아니다’고 했다. 그녀의 언급에 따르면 권력을 향한 질문은 민주주의로 가는 첫걸음인 셈이다. 또한 모든 선출직 공직자는 그들을 뽑아준 국민의 질문에 답할 의무를 지니는 게 당연하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질문을 할 게 많은 사회다. 또 그런 질문들에 그 어떤 권력도 속 시원히 답을 해주지 않는 사회이기도 하다. 세월호 사고 초기 7시간 동안 대통령은 무엇을 했느냐는 국민의 질문에 대통령은 답하는 게 마땅하다. 어버이연합에 누가 돈을 댔느냐는 질문에도 답해야 한다. 정운호 게이트의 진상을 묻는 질문에도 또한 답해야 하며, 옥시 살균제가 그 많은 인명을 앗아가는 동안 정부는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에도 분명한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사안에 대해서 국민들은 답변을 듣지 못하고 있다.

상시청문회는 입법의 권한이기 보다는 국민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는 자리다. 국민의 질문이 많다고 국정이 마비되는 나라는 없다. 박 대통령의 이번 거부권 행사가 너무 상식 밖이기에 임기가 끝난 훗날을 염려하는 의도라는 의심까지를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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