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서울에서 열린 산자부 주관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기본계획(안)공청회는 원적으로 무효다. 정부 주관 공청회가 아니라도 계획(안)발표와 종합토론, 질의응답 등의 절차를 거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이번 공청회는 ‘날치기’로 공청회를 했다는 흔적만 남겼을 뿐 모든 절차가 생략됐다. 어디서 많이 본 눈에 익은 모습이 연출됐다고 한다. 국회에서 법안 등 안건을 처리할 때 이용되던 그 ‘날치기’ 수법을 베꼈다.

찬반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법안은 이익을 보는 쪽도 있다. 하지만 핵폐기물관련 정책을 결정하기 위한 이번 공청회로 이익 보는 ‘쪽’은 없다. 있다면 정부 당국자들의 행정편의 뿐이다. 사안 자체가 국민과 국가의 존폐와 직결된다. 전 국민의 의견을 듣는 것이 최선이다. 최소한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지역주민들의 의견이라도 충분히 듣고 결정해야 마땅한 사안이다. 그런데 주무 부처인 산자부는 애초부터 원전소재 지역민의 의견을 듣는 것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공청회 장소에 미리부터 경찰 병력 300여 명을 배치했다. ‘알바생’으로 보이는 청년들을 미리서 공청회장에 앉혀놓았다. 그것도 부족해 용역회사에서 동원한 것으로 보이는 100여 명까지 동원, 출입과 그들의 보호를 맡겼다. 당초부터 공청회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기를 포기했음을 드러낸 준비다. 어쩌면 의견을 제시하고 요구사항을 말하기 위한 원전소재 지역민들의 이견 따위는 듣지도 들을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고 밀어붙이겠다는 전략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경찰 병력이나 용역회사 인력 동원은 정상적 공청회의 진행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투입해도 늦지 않다. 미리부터 극단적인 상황을 예단한 준비를 한 것만 미루어 보아도 정상적 공청회를 통한 지역주민 의견을 수렴할 의지가 없었다고 본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지역민 의견 수렴을 거친 것으로 윤색하기 위한 과정으로 단정하는 바다.

정부 정책은 국민을 위한 것이다. 국민 의견이 가장 중요한 이유다. 그런데도 산자부가 지역 주민들의 반대와 요구사항이 두려워 어떤 수를 쓰던 절차를 거쳤다는 형식만 갖추고 추진하려한 것 자체가 모순이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지역민간의 갈등을 유발한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특정 지역민을 ‘선택’해 그들의 의견을 지역민 의견이라고 우기려 한 정황도 포착된다. 심지어 군수나 군 의회와도 협의를 했다는 주장을 서슴지 않고 있다.

군수·군 의회와의 협의 여부는 ‘진실게임’을 통해 밝혀지게 돼있다. 군수·군 의회는 적극 부인하고 있다. 지역민들로서는 군수·군 의회의 말을 더 믿고 있다. 산자부의 추진 과정 자체가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의 방침대로 추진하겠다는 것은 독재정권에서나 가능하다. 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는 시도 자체가 범죄다. 산자부 등 원전 관련 정책 당국은 각성하고 지역주민 의견에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그것이 가장 빠르고 현명한 방안임을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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