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은 이제 천하지대본이 아닌 부차산업 취급을 받고 있지만 사양산업이 될 수는 없다. 기초 먹거리 생산을 대신할 대체산업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구 종말의 얘기를 다룬 SF영화들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푸른 채소들을 가꾸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장면들이 곧잘 등장한다. 농업이 성장 경제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어도 인간 삶의 불가피한 조연 역할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느린 속도의 웰빙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로망도 농업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한 라이프 트랜드의 변화가 귀농· 귀촌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2011년에 1만 가구를 넘어선 귀농인구는 2012년~2013년 사이에 소폭의 하락 기미를 보였지만 매년 20%의 성장세를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도시에서 열리는 귀농학교가 관심을 모으며 신청자가 해마다 늘고 있을 정도다.

바람직한 일이다. 농촌 고령화의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며 농어촌 실물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 틀림없다. 단지 전원생활을 즐기려는 귀촌이 아니라면, 이들은 농산물 생산에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도시에서 각자의 전문분야에 종사했던 이들은 꽤나 진지하게 농업을 탐구하는 편이기도 하다. 선진 농업 활성화의 소중한 에너지원이다.

얼마 전 필자가 인터뷰한 귀농인 A씨는 7년 전 농촌에 내려와 오랜 실험재배 끝에 게르마늄을 먹인 쌀 생산에 성공하고 상표를 출원했다. 그리고 지금은 중국·일본 등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 결과에 상관없이 A씨의 행적은 신제품을 만들어 해외 마케팅에 나선 신산업 CEO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FTA시대에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는 일반론을 뛰어 넘어 우리의 농업 또한 여느 공산품과 다름없는 브랜드 마케팅을 통해 굳건한 산업 기반을 다시 쌓을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한다.

이런 움직임들을 유심히 눈여기면서 필자는 한국농촌에 제2의 새마을 운동이 필요한 혁신의 시기가 다시 도래했다는 생각을 해보며 문득, 영광 출신 고 김준 선생을 떠올려 본다. 김준 선생은 초대 새마을운동연수원장을 맡아 한국 농촌 근대화과정에서 빠트릴 수 없는 사회운동인 새마을 운동의 초기정신을 정립한 농촌혁신운동의 선구자다.

김준 선생은 농업인의 삶을 ‘농심’이라는 농촌공동체 가치추구를 통해 농업기반사회의 인문정신으로 정착시킨 주역이었다. 또한 공직을 마친 후 스스로 향촌에 귀의, 농업에 전념한 농촌 귀농운동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김준 선생이 설파한 ‘농심 철학’에 감동해 롯데그룹의 신격호 회장이 ‘농심’을 라면 이름에 쓰게 해달라고 간청해 ‘농심 라면’ 브랜드가 탄생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새로운 전환기에 들어선 한국농업의 활로를 다시 고심해보며, 필자는 한국의 소중한 인적 자산이었던 김준 선생을 추념의 선인으로만 기억 속에 묻어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는 또한 영광의 빛나는 역사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김준 농심학교’ 설립을 지역사회에 제안한다.

‘김준 농심학교’를 통해 미래농업의 비전을 실천할 농업인재들이 꾸준히 양성된다면, 영광은 한국 농촌혁신운동의 메카로 자리매김 될 수 있을 것이며, 한국 농촌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가는 선구적 산실로 도약함은 물론 그 이름값을 오래도록 한국농촌운동사에 새길 수 있을 것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꿈꾸듯, 그런 날이 오기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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