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온 나라가 한동안 시끄러웠다. 국정화 찬반 논란이 정당간, 계층간, 지역간, 세대간 갈등의 양상으로 확대되고 국론이 분열되었다.

인간사 모든 일들이 그러하겠지만 역사적 사실과 현상에도 명암은 동시에 존재한다. 어떻게 바라보느냐, 어느 쪽을 비추느냐에 따라 역사의 가치 판단은 달라진다. 그러므로 ‘암살’의 방식으로 자기가 필요한 곳만 비춰서도 안 되고, ‘사도’의 경우처럼 자신의 주관만을 내세워서도 곤란하다. 학생들이 역사적 팩트를 통해 미래를 살아가는 지혜와 교훈을 얻도록 의도하는 것이 교과서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교과서는 역사의 명과 암을, 역사의 다양한 시각을 동시에 다루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학생들은 균형 잡힌 역사 인식을 갖게 될 것이다.

예컨대, 개발과 민주화 과정의 명과 암을 동시에 기술해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날 교과서 집필자들은 과거 왕실의 역사를 기록했던 사관들과 그 역할에서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사관들은 자신들의 눈에 비친 사실만을 기록했을 뿐 거기에 어떤 주관이나 이념은 결코 개입하지 않았다.

경향신문 논설위원인 이기환씨는 그의 ‘역사가의 양심’에서 과거 사관들의 추상같은 엄정한 자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조선 태종 3년(1404년), 태종 임금이 사냥을 나갔다가 말에서 떨어졌다. 체면을 구긴 임금이 급히 일어나면서 이 일을 사관이 모르게 하라고 측근에게 입단속을 시켰다. 하지만 사관은 ‘쓰지 말라’는 임금의 오프더레코드 명령까지 <태종실록>에 기록했다고 한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 ‘최저’가 임금을 살해 했는데 그때 사관 3형제 중 큰형이 나서 ‘최저가 임금을 죽였다’라고 쓰자 최저는 ‘쓰지 말라’고 하며 큰형을 죽였다. 그러자 둘째가 나서 이에 굴하지 않고 똑같은 글을 쓰고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막내 동생까지 나서며 사실을 기록하자 결국 최저도 두 손을 들고 말았다고 한다.》  

 역사 교과서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국정이냐 검정이냐가 아니라고 본다. 검정이라도 편협한 시각을 담은 교과서는 학생들의 가치 판단을 흐리게 할 위험한 교과서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균형 잡힌 역사 인식을 갖도록 하는 일이다. 소신 있는 집필자라면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사초(史草)에 목을 걸었던 사관들처럼 바른 역사 기술에 목을 걸어야 한다. 그가 진보건, 보수건 역사를 집필하는 교육자적 양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역사 기술이 거부당했다면 그땐 과감히 필(筆)을 던지면 될 일 아닌가.

류제경 영광초등학교 교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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