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4일, G20 정상회의 참석차 중국 항저우로 떠났다. 국회 청문회에서 장관 임명을 반대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조윤선 후보자를 농림축산식품부장관에 김재수 후보자를 전자결재로 임명했다. 인사청문회법상 국회는 청문요청서를 접수한 날부터 20일 이내 청문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지난 8월 19일, 조윤선과 김재수 후보자에 대한 청문요청서를 제출했다. 국회는 8일까지 보고서를 채택하여 송부해야 했다. 이 기간 내 보고서가 송부되지 않을 경우 대통령은 그 이후에 장관후보자를 임명할 수 있다. 국회는 공식적으로 2일에 보고서를 송부했다. 이에 따라 적격여부와 상관없이 대통령은 청문 보고서를 채택한 이후, 장관 임명이 가능하기에 임명을 한 것이다. 국회는 여당 불참 및 야당 단독으로 조윤선·김재수 장관후보자를 ‘부적격 의견 다수’라는 결과의 보고서를 채택한 바 있다.

이같은 일련의 상황을 대통령이 법적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았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단정하기엔 문제가 심각하다. 대통령이 전자결재를 통해 행정행위를 넘어서 정치행위를 한 것이 이 번 만은 아니다. 지난 5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청문화 활성화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황교안 국무총리를 통해 전자결재 한 바 있다. 우선, 어떻게 장관을 해외에서 전자결재로 임명하는가? 전자결재의 대상은 일반적으로 ‘일상적’이고 ‘실무적’인 사안에 국한해야 한다.

예를 들어 ‘휴가신청’ ‘출장 신청 및 결과 보고’ ‘초과근무 내역서 및 확인대장 결재’ 등과 같은 것이다. 물론 전자정부의 구현이념은 유비쿼터스로,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다는 것’인데,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대통령의 결재행위가 국가적으로 중대하거나 삼권분립에 위협이 있을 경우에는 제한이 필요하다.

대통령은 국회를 무시했다. 청문회 활성화법 거부권 행사와 부적격 의견이 담긴 청문회 보고서 채택 이후 장관 임명 강행 전자결재라는 행정행위는 대통령이 입법부를 하위 기관으로 본다는 것이다. 국회와의 협치를 강조하고 있으나, 이는 결국 권력분립의 수평적 관계가 아닌 행정부 독주의 수직적 협치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인사청문회 제도를 하나의 요식적인 절차로 보고 있다.

장관 임명 전자결재는 또 국가관료제를 무시하는 처사다. 장관 임명은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은 맞지만, 화급을 다투어 신속하게 결정할 사안은 아니다. 이미 국가 관료제가 각 부처 수장인 장·차관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대통령이 해외에 1~2주 머무는 동안, 장관 임명이 지연되더라도 각 부처의 행정이 돌아가는 데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무리 장관 임명이 급하다고 판단하더라도 해외 순방중에 전자결재로 부처 장관을 임명하는 행위는 국가행정과 정부관료제에 대한 모독행위이기도 하다. 전자결재의 일반적 대상이 일상적 혹은 실무적인 것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이 보기에 장관 임명은 일상적이고 실무적인 것인가?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정부를 가진 대한민국은 자랑스럽다. 하지만, 삼권분립을 무시하고 국가 중대사안을 전자결재로 처리하는 것은 한편 부끄러운 처사다. 장성급 군인을 임명하는 과정에서도 국회 인준을 요한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장관 임명은 일상적인 고위공무원 임명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양태를 보이고 있다. 또한, 대통령의 인사에 대한 국회의 견제권이 사실상 유명무실화 되고 있다. 대통령의 정무직 장관 인사에 대한 보다 높은 내·외부 견제 체계가 필요한 상황이다.

첫째, 국가 중대사안과 삼권분립에 침해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전자결재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제외대상에는 예를 들어, 임명동의안 및 인사청문요청서 국회 제출, 국회 청문회보고서 채택 후 장관 임명, 차관보급 이상의 정무직 공무원 임명, 재의요구권 제출(거부권 행사)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전자정부법 제3장 전자적 행정관리 상에 전자결재 대상 조항을 신설하여, 대통령을 포함한 전 행정기관 수준별 전자결재의 권한과 대상에 대한 명시가 필요하다. 시행령이나 대통령령 수준에서 정하게 되면, 이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기에 전자정부법 상에 명시해야 한다.

둘째, 국회의 인사청문회 대상과 그 권능을 점차 확대해나가야 한다. 인사청문회 결과에 대한 대통령의 개인적 존중 여부에 의존한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국회의 견제로는 실효적인 인사청문회를 만들기 어렵다. 인사청문회 결과보고서 채택 시, 부적격 판정이 이루어진 장관후보자가 발생할 때, 대통령이 만약 부적격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하고자 할 경우, 대통령과 관련 부처는 부적격 사유에 대한 적정한 수준의 해명서와 함께, 관련 우려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장관직 업무수행계획서를 별도로 관련 국회 상임위에 제출토록 해야 한다. 관련 국회 삼임위는 이 해명서와 장관직 업무수행계획서가 충분하다고 판단되지 않을 경우, 1회의 추가적인 보충작업을 요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아울러, 현재 장관급 이상의 인사청문회 대상을 차관급 이상, 전국 단위 대규모 공공기관의 장을 포함하는 등 확대할 필요가 있다. 미국 상원의회가 인준하는 공직자는 약 1천명이며, 각 부처별 공식서열 4위까지도 상원에서 인사청문회를 거쳐야만 인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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