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2일, 19일 이틀 동안 경주를 중심으로 규모 5.8, 4.5 규모의 강진이 발생했다. 여진도 이어지고 있다. 피해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가 결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을 몸으로 확인한 것이다.

지진 안전신화가 깨지면서 뒤늦게야 양산 단층대가 언제든지 큰 움직임이 있을 수 있는 활성단층대라는 학계의 목소리에 국민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국민적 각성으로 끝낼 일은 아니다. 그 일대에 산재한 원자력 발전소들 때문이다.

월성 원전, 고리 원전 등 이 지역에만 16개의 원전이 활성단층대 위에 얹혀져있다. 며칠 전 ‘탈핵 에너지 전환 국회의원 모임’이 공신력 있는 민간연구소의 자료를 인용해 발표한 원전 피해 시뮬레이션 결과는 충격적이다. 만일 이번 지진으로 ‘신고리 원전’ 노심이 손상되는 큰 사고가 발생했다면 부산·울산·경남 주민 1만 6천 240명이 피폭돼 1주일 안에 사망하고, 향후 50년간 280만 명이 암으로 사망한다는 것이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도 남의 일처럼 여겼던 많은 국민들의 모골이 송연해졌을 게 틀림없다. 고속버스로 4~5시간이면 어디든 갈 수 있는 비좁은 나라에서 남의 집 불은 곧 내 집 앞 불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일본 열도 70%가 방사능에 오염됐다는 보고서에서 알 수 있듯이 사고가 발생하면 대한민국 어디든 안전한 곳은 없다.

경주 지진 사태 이후 ‘탈핵’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민들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한번 터지면 인류 공멸의 길로도 갈 수 있다는 위기의식 탓인지 세계적으로 탈핵 분위기는 고조되고 있다. 독일은 이미 2022년까지 모든 핵발전소 가동을 중지시키는 탈핵 국책을 추진 중이다. 벨기에, 스위스에 이어 최근엔 대만도 탈핵선언에 동참했다. 덴마크는 2020년까지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30%까지 늘린다는 감핵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추세에 비춘다면 우리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현재 25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지만 2029년까지 총 36기의 원전을 추가 건설하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솔직히 쉽지도 않을 일이다. 이미 지난 2012년에 서울 노원구를 비롯한 전국 45개 지방자치단체가 원자력 발전소 확대에 반대하는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입지를 선정하는 일 자체가 난망이다. 정부가 강행을 한다면 주민들의 사활을 건 반대투쟁이 불 보듯 빤하다.

원전 정책은 이제 재고돼야 한다. 따지고 보면 값싼 에너지도 아니다. 폐기물처리장 같은 후속 시설들을 만들어 가는데 엄청난 사회적 경비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의 원전 철학을 곰씹어볼 일이다. 지금 우리가 값싼 에너지를 사용하는 편리를 위해 후세들에게 핵 위험을 떠넘길 수 없다는 게 탈핵 선언의 취지였다.

얼마 전 정부가 신재생에너지산업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야심찬 계획이었고, 충분히 박수 받을 일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원전건설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정책을 그대로 두고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활성화될 리 만무하다. 원전 건설 자금을 과감하게 재생에너지 산업에 투자해 원전에 기대는 에너지 의존율을 줄이면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꾸준히 늘려가는 게 맞다.

국민들도 에너지 문제에 대한 가치 선택을 해야 할 시기다. 다음 세대의 지속번영을 위해 탈핵의 길로 갈 것인지, 당대의 경제논리를 택해 원전을 그들의 삶에 떠안길 것인지 깊이 성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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