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어려움이나 환란이 닥쳤을 때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상의 의무를 말한다. 고귀한 신분을 가졌다면 도덕적 책무도 커야한다는 프랑스 격언으로 고귀한 신분으로 정당한 대접을 원한다면 명예(노블레스)만큼 의무(오블리주)도 다 해야 진정한 지도층으로서 자격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특권만 누리고 도덕적 책무를 소홀히 한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인 책임 있는 도덕적 의무와 공공에 솔선수범하는 정신에서 출발한 용어다.

이런 사회적 의무는 귀족사회를 지탱해주는 방법일수도 있지만 지도층의 모범된 자세로 민족이나 자국민을 결속 시키는 효과도 크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 때 있었던 칼레의 시민을 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얼마나 일반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프랑스 동북부에 위치한 칼레라는 도시가 있다. 노르망디 해안의 작은 항구도시인데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과는 불과 34Km밖에 되지 않은 근거리에 위치한 도시다. 1347년 영국과 프랑스는 프랑스의 왕위 계승권을 놓고 100년 전쟁이라 일컫는 지루한 전쟁을 하고 있었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칼레를 내어주면 육지 진입이 쉬워지므로 끝까지 저항해야만 했다. 본부의 지원도 없고 오랫동안 저항하다 결국은 영국에 무릎을 꿇는 상황이 왔던 것이다.

도시 곳곳이 화염에 싸이고 막다른 상황에 처한 칼레에서는 어쩔 수 없이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항복하기로 하고 자비를 구했다. 영국 입장에서도 너무 피해가 커서 칼레시민들을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칼레 시민을 다 죽일 수는 없고 전투에 가담하여 영국에 가장 피해를 많이 주었던 6명을 처형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으려 했다. 사절단이 칼레에 돌아와 시민을 모아 놓고 내일 아침까지 6명의 전범을 처단하고 끝낸다고 하니 여섯 명의 명망 있는 사람 들이 나와야 한다고 발표 했다.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난감해 하고 있을 때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칼레의 최고 갑부였던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였다. “제가 우리 칼레를 위해서라면 죽겠습니다. 저는 칼레 시민들 덕택으로 부자가 될 수 있었으며 지금까지 부자로 살았으니 칼레 시민들을 위해 이 한목숨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어느 누가 저와 함께 반열에 오르겠소.”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당시 칼레 시장이던 ‘장데르’가 나섰고, 이어서 상인으로 부자가 된 ‘피에르 드 위쌍이’ 죽음을 자처하고 나섰다. 그러자 위쌍의 아들이 젊은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나서는데 내가 어찌 비굴하게 산단 말이요 하며 나섰다. 드디어 4명이 자원하였고 2명만 더나오면 해결될 상황이었다. 이어서 3명이 동시에 자원하고 나서자 7명이 되어 오히려 한사람은 빠져도 되는 상황이 되었다.

제비뽑기로 한 사람을 살리자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가장먼저 손을 들었던 외스타슈는 반대했다. “우리가 추첨을 한다면 칼레 시민을 위해 죽겠다는 마음이 퇴색 될 수 있으니 내일아침 가장 늦게 처형장에 나오는 사람을 빼도록 합시다.” 7명 모두가 찬성을 하고 헤어졌다. 고통 속에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모두 모였는데 가장 먼저 자원한 외스타슈가 보이지 않았다. 깜짝 놀란 사람들은 그의 집으로 황급히 가보았으나 이미 그는 차디찬 시체로 변해있었다.

그는 죽기 전 유서에 “처형을 자원한 일곱 명 가운데 한사람이라도 살아남아 비겁자의 오명을 쓰게 되면 안 될 것 같아 제가 먼저 죽습니다. 먼저 하늘나라에서 위대한 그대들을 기다리겠습니다.” 외스타슈의 죽음을 본 여섯 명은 결의를 새롭게 다지며 영국왕의 요구대로 허름한 옷에 목에는 밧줄을 감고 영국진영에 맨발로 걸어갔다. 그때 에드워드 3세에게는 ‘에노의 필리파’라는 왕비가 공교롭게도 임신 중 이었는데, 살인을 하면 태아에게 해가 끼칠 것을 두려워하여 살려줄 것을 간청했다.

영국왕은 아내의 말을 받아들여 여섯 명의 사형을 중단했다. 외스타슈 한사람의 죽음으로 온 칼레의 시민, 특히 죽음을 각오했던 여섯 명 까지도 살리는 위대한 일을 해 냈던 것이다. 외스타슈는 혼자서 살길도 있었을 것이다. 프랑스 정부를 탓하며 숨어 살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한목숨 던져 명예롭게 칼레 시민은 물론 세계적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재물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꽉 찬 진정한 부자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P.S : 이어서 중국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사람들과 우리나라의 임상옥과 제주의 김만덕, 경주의 최부자 댁을 더 연구해서 소개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이경일 회사원 (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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