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 회사원

‘아는 것이 힘이다’는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이 한말이 있다. 반면에 동양에서는 ‘글자를 아는 것이 오히려 병이다’라는 말은 중국 삼국시대 《삼국연의》 에서 서서가 어머니의 편지를 받아보고 조조에게 갔을 때 어머니의 글씨체를 흉내 낸 위서(僞書)인 것을 보고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며 한말이다. 어떤 것이 맞는 말일까? 지식이나 정보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때때로 지식이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해서 낭패를 보는 경우도 생기기 마련이다. 우리가 어떤 문제에 대해 확실하게 알고 있으면 타인에게 잘 전달할 수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오히려 소통을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런 경우가 발생할 때 ‘지식의 저주’라고 한다.

미국에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뉴턴이 1990년 스탠퍼드 대학에서 박사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실험했던 결과이다. 그녀는 피험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A그룹에는 모두가 잘 아는 노래제목을 알려주고 리듬에 맞추어 테이블을 손으로 두드리며 장단을 치라고 했다. 다른 B그룹에게는 노래 제목은 모른 채 테이블 두드리는 소리만 듣고 제목을 맞춰 보라고 했다. 실험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먼저 A그룹 피험자들에게 물었다. 정답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질문에 약 50%정도는 맞출 것으로 대답했다. 그런데 실험을 한 실제 결과는 겨우 2.5%만이 노래 제목을 맞추었을 뿐이다.

모두 120개의 노래에 단 3곡밖에 정답을 맞추지 못했다. 왜 이렇게 예상이 빗나갔을까. 예를 들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애국가를 불렀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는 노래를 머릿속에 연상하면서 리듬에 맞추어 테이블을 두드릴 것이다. 그러나 테이블 소리를 듣는 사람입장에서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박자만 가지고 판단하려니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래를 이미 알고 두드리는 사람입장에서는 이런 것도 못 맞추느냐고 한심하게 볼 것이다. 그러나 맞추기가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아는 사람과 전혀 모르는 사람 간에는 이렇게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이렇게 지식의 차이가 깊으면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어떤 것에 알고 나면 그것을 모르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상상할 수 없게 되는데, 이런 것이 바로 ‘지식의 저주’에 해당한다. 우리는 그 어떤 특정한 부분을 잘 알면 그 방면의 전문가라는 호칭을 많이 쓴다. 전문가를 잘 활용하는 방법은 전문가는 ‘양날의 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전문가가 지식이라는 교만함에 빠지지 않도록 견제하는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 전문가가 초보자보다 뛰어난 수행을 보이려면 절대조건이 있어야한다. 그것을 풀어야할 문제가 전문가가 잘 할 수 있는 과제 이어야 한다.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는 이 조건을 위반하면 전문가로서의 존재가치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독일 중서부 루르에는 대형해양생물 수족관이 있다.

이 수족관에 파울 이라는 괴짜 문어가 있는데 이문어가 독일 대표 팀이 경기를 하기 전에 어느 팀이 이길 것인지 예측하면 모두 맞추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문어다. 승리 예측 방법은 경기를 치를 두 나라 국기가 그려진 유리 상자에 문어가 좋아하는 홍합을 넣어두면, 파울이 어느 쪽의 홍합을 먹느냐에 따라 승패를 점치는 방법으로 진행했다. 즉, 파울이 먹는 쪽의 나라가 이기는 것이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파울의 예측은 독일의 7번 경기는 100% 맞췄다. 그러나 수학적으로도 아무나 맞출 확률 50%는 가지고 있다. 독일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의 경기는 틀린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이 문어를 믿고 도박에 참여했다면 132배의 수익을 얻었을 것이라고 하니 문어의 예측은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해양 학자들에 의하면 문어는 색맹이라 빨간색이 유난히 잘 보여 빨간색 무늬를 잘 선택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인간이 아닌 동물의 신통력에 흥미를 가질까. 그것은 전혀 모르고 정확하게 예측하므로 더 열광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신통력과 반대로 세계누구나 인정하는 축구 전문가 펠레의 예측은 매번 빗나갔다. 당시 월드컵 때는 ‘펠레의 저주’라는 말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보통사람들이 예측해서 틀리면 그냥 넘어가지만 축구 전문가로 펠레는 세계적인 스타이기 때문에 저주라고 했으며 자꾸 틀리는 바람에 ‘전문가의 저주’로 불렸던 것이 아닐까.

이경일 회사원 (대한시멘트)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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