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그 이름 뒤에 직함을 붙이기가 쉽지 않다. 오늘의 언론은 ‘전 민주당 상임고문’이라고 쓰고 있다. 당내 직함으로는 ‘전 대표’이기도 하다.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치인’이나 ‘전 경기도지사’ ‘전 국회의원’ ‘전 장관’ ‘전 교수’ ‘정치학 박사’라고 하기도 거시기 하다. 열거한 직함을 모두 녹여내면 그는 ‘정치인’이다. 정치인 손학규가 처사를 자처하며 강진으로 간지 2년 3개월 만에 다시 ‘정치인’이 되겠다고 나섰다.

다시 정치인으로 나서는 ‘변’이 궁금했다. 위기에 몰린 대한민국의 정치와 경제의 새판을 짜겠다고 했다. 그저 그렇다. 모든 기득권을 버리겠다는 말도 그렇다. 당적도 버리겠다고 했다. 예상됐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 왜? 조금은 웃겼다. 그 다음의 말이 귀를 때린다. “명운이 다한 6공화국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저한테는 아무 의미가 없고 제7 공화국을 열고 꺼져버린 경제에 엔진을 달아 다시 시동을 걸기 위해서….”

‘공화국’의 앞에 새로운 숫자를 다는 것은 개헌으로 정치 체제를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역사에서 ‘공화국’ 앞의 숫자가 바뀐 것은 혁명적 상황에서 였다. 이승만의 제1 공화국은 4·19혁명으로 무너졌다. 의원내각제 개헌으로 들어선 윤보선의 제2공화국은 5·16으로 무너졌다. 박정희는 스스로 세운 제3 공화국을 유신헌법으로 제4 공화국을 만들었다. ‘셀프 혁명’이다. ‘종신 대통령’ 혹은 ‘총통’이 되겠다는 의도라는 의심을 샀다.

10·26 사태로 ‘봄’이 오는 듯 했다. 꽃샘추위는 매서웠다. 전두환 등 ‘하나회’ 멤버들은 5·18민주화 ‘혁명’을 등에 업고 제5 공화국을 열었다. 숫자는 바뀌었으나 군부정권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박정희 정권의 연장이다. 허울 좋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역사다. 현재의 6공화국은 6월 민주항쟁의 산물이다. 직선제 개헌을 끌어낸 6월 항쟁은 전두환 등 군부에겐 혁명이었다. 손학규의 “제7 공화국을 열겠다”는 말은 그래서 강한 울림이 있다. 혁명적 변화를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개헌을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자는 국민을 향한 호소이기 때문이다.

손학규는 6공화국 체제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돼도 나라를 끌고 갈 수가 없다고 단언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라면 악마하고도 손을 잡는 나라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등 6공 체제의 대통령 누구도 명예롭지 못했다. 구속과 아들비리, 자살과 측근비리, 무능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박근혜 대통령도 불통으로 아무 것도 못하고 있어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아버지 박 대통령도 더 이상 어쩌지 못하는 지경이 됐다. ‘실패’의 수식어가 붙을 날도 머지않다.

5년 단임의 대통령 6명 모두가 ‘실패’의 불명예를 안았다면 분명 제도적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개인의 탓이지만 황제적 권력이 그들을 불명예스러운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 본인 뿐 아니라 나라의 정치도, 나아가 나라까지 위기에 처했다. 대통령 바라기가 되지 않으면 권력의 단맛을 볼 수 없으니 여당은 대통령만 바라본다. 야당과의 협치는 말 뿐이다. 정치 자체가 실종돼버렸다.

개헌은 그래서 대한민국의 최대 화두가 됐다. 개헌이란 말 자체를 못하게 하던 박 대통령도 이젠 아무 말도 못할 정도가 됐다. 내년의 대선과 맞물려 개헌을 매개로 한 제3지대론, 혹은 비패권지대론 등 시나리오도 진화(進化)하고 있다. 손학규가 주창한 제 7공화국은 개헌 주장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전달되는 강도와 맛이 더 비장하고 역사 발전을 추구하는 강한 의지가 담겨있다.

손학규는 서민의 애환도, 정치권력도 깊은 데까지 체험했다. 성공도 실패도 경험했다. 의사의 아들 안철수와 어느날 권력을 한 손에 쥔 문재인과의 깊이는 분명 큰 차이가 있다. 손학규가 던진 화두 ‘제 7공화국’은 혁명적이다. 혁명적 변화가 요구되는 대한민국의 정치와 경제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처방이 있을까?

조일근 편집위원장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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